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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1,100도로 흰 사슴 동상

by 훈 작가 2023. 7. 31.

한라산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아래쪽으로 눈이 온 것 같아 1,100도로 휴게소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0 여분을 달려 오르니 눈옷을 걸쳐 입은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1,100 고지휴게소에 이르니 주차장 초입부터 차들이 북적이는 데다 주차할 데가 난리였습니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다 도로 한쪽에 그때 막 빠져나가는 차가 있어  주차했습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겨울왕국을 찾아온 사람들로 휴게소 주변은 혼잡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사슴 동상 사진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으려 11월의 겨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손이 꽁꽁 얼 정도로 매섭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사슴 동상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찍어야지? 이리저리 살펴보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 컷 찍고 다시 손이 시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손이 녹았다 싶으면 다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렇게 3~4컷 찍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한라산 정상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사슴 동상과 한라산 정상이 함께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끝내 하늘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슴이 1,000년을 살면 색이 푸르게 되고, 여기에 또 100년을 더 살면 흰색으로, 또 500년을 더 살면 검게 변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하얀 사슴(白鹿)은 적어도 1,100년을 산 거죠. 모르긴 해도 1,100도로는 그런 연유로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사슴 동상이 이곳에 세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란 얘기입니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찾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산을 오르지 않고도 겨울 한라산의 설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기 때문입니다. 

찜통더위 때문에 마음이라도 겨울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나머지 지난겨울 찾았던 제주도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보다가 위 사진에 멈추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을 찍을 때 정말 엄청나게 추웠거든요. 아마 사슴 동상이 아니었으면 1,100 도로에 올라가지 않았을 겁니다. 이거 참 사진이 뭔지?

이왕 하얀 사슴 동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백록(白鹿)의 대한 전설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1,100도로 휴게소 인근에 설치된 유래비에 있는 내용임을 밝힙니다.

『옛날 한라산 기슭에 한 젊은 사냥꾼이 살았습니다. 그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늘 어머니의 병을 고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나그네로부터 어머니의 병에는 사슴의 피가 특효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일찍 일어나 시냇물에 목욕하고 사슴사냥에 나섰습니다. 하루 내 사슴을 찾아 헤매다 보니 한라산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정상에는 짙은 안개가 덮여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단념하지 않고 안갯속을 계속 헤매다 마침내 사름 한 마리를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흰 사슴(백록)이었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순식간에 활시위를 당기고 막 시위를 놓으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백발노인이 나타나 백록을 막아서더니 이내 사슴을 거느린 채 짙은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사냥꾼은 그 노인과 백록이 사라진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큰 연못이 있을 뿐 노인과 사슴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노인은 한라산을 지키는 신선이었습니다. 사냥꾼은 사슴사냥을 포기하고 대신 그물을 떠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오랜 어머니의 병이 하루아침에 말끔히 가시는 게 아닙니까. 뒷날 사람들은 이 연못을 백록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백록은 가장 심성이 어질고 효성이 극진한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합니다. 지금도 한라산에는 백록이 살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백록을 본 사람은 큰 행운과 함께 장수를 함께 얻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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