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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달님! 밤보다 낮이 무서워요.

by 훈 작가 2023. 8. 8.

오래전에 KBS TV에서 방영하던 <전설의 고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납량 특집 드라마로 단골손님처럼 방영되곤 했습니다. 원한 맺힌 억울한 죽음이 귀신으로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았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옛날에는 밤이 무서웠습니다. 특히, 밤에 화장실 가기가 겁이 났습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였죠. 불가피하게 밤에 화장실에 갈 때면 엄마를 불러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먼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엄마가 화장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며 엄마를 불렀던 추억이 있습니다. 

밤이 무서웠던 이유가 귀신이었지만, 사실은 캄캄해서 무서웠습니다. 한밤중에 으슥한 길을 혼자 걸어 보셨나요? 실제로 어두운 밤 시골길이나 산모퉁이 길을 혼자 걷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경험상 주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이 되고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낮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거리의 악마 때문입니다. 여기에 사람을 죽이겠다고 예고하는 게시글이 인터넷상에 올라오니 더욱 불안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연이은 일련의 사건이 말 그대로 온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귀신보다 악마가 더 무섭습니다. 귀신은 밤에, 원한을 품게 만든 못된 사람 앞에만 나타났지만, 요즘 악마는 사람의 탈을 쓰고 낮에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니 불안합니다. 게다가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테러를 자행하니 더욱 겁나고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섭습니다.

밤보다 낮이 무섭습니다. 사람의 탈을 쓴 거리의 악마와 마주칠 것 같아서입니다. 본래 악마는 빛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밝은 대낮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악해진 악마가 사람의 영혼에 숨어들어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이젠 낮이 무서워진 겁니다. 역설적으로 달 밝은 밤이 정겹게 여겨지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밤이 무서웠던 시절은 어둠 자체가 무서웠습니다. 그때는 귀신도 양심이 있었던지 낮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리의 악마가 어떻게 사람의 영혼 속에 숨어드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킨 악마의 모습이 귀신과 달리 우리와 매우 흡사해 분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참에 달님에게 부탁해 볼까 합니다. 달님! 어떡해야 거리의 악마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죠? 악마가 나타나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해가 너무 예전 같지 않게 화가 많이 난 것 같아 부탁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답답해 죽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달님!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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