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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내 탓, 네 탓” 선진국

by 훈 작가 2023. 8. 15.

삼척 쏠비치 리조트 산토리니 광장에 ‘희망의 꽃(Hope-flower)’이라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 작품엔 ‘삼척의 손가락’이라는 애칭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형물이 내 눈에는 누군가를 탓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조형물의 손이 ‘너 때문이야.’ 하는 모양 같기도 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조형물이 지닌 의미를 알지 못한 상상의 자유가 불러온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김병진 작가는 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뛰어난 STEEL-ART 조형물 작가로 ‘희망의 꽃(Hope-flower)’에는 두 가지 의미의 이야기를 하나의 형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꽃 모양의 개별 유닛들을 하나하나 제작해 용접으로 이어 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하나 꽃 모양을 붙여 사람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의인화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보면  작가의 예술적 열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병진 작가는 이 조형물을 통해 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첫째, 손을 뻗고 있는 동작은 작품과 관람객의 교감을 유도하고, 둘째, 개방된 출입구를 통해 관람자들은 작품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구조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소통과 참여를 유도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를 모른 채 나는 이 작품을 ‘탓’이라고 생각했으니 작가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예전부터 잘못된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은 흔했습니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부터 ‘솜씨가 서투른 목수는 연장 탓’을 하고, ‘선비가 글을 잘못 쓰면 지필묵 탓’하고, ‘갓 시집온 며느리가 밥을 잘 못 지으면 땔감 탓’을 하고, ‘집안에 양식이 떨어지면 손 큰 며느리 탓’하고, ‘장님이 길 가다 물에 빠져도 개천 탓’을 했을 정도로 한국인의 핏속에 남 탓-DNA는 유별났습니다.

요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내 탓, 네 탓’ 진흙탕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판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언론 탓, 검찰 탓, 판사 탓까지 합니다. 여기에 질세라 경영자는 노조 탓, 노조는 경영자 탓, 어른들은 젊은이 탓, 젊은이는 노인 탓, 너도나도 내가 아닌 남 탓에만 몰두하는 사회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나라가 온통 ‘탓’ 싸움터 같으니 말입니다. 불쌍한 건 선한 국민입니다. 

불과 얼마 전 금쪽이 같은 내 새끼만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교사 탓, 날마다 학생 인권 때문에 꼼짝 못 하는 교사는 행정기관인 교육청 탓하는 싸움은 진행 중입니다, 여기에 잼버리 잔치가 끝났으니 또 다른 ‘내 탓, 네 탓’ 공방이 시작될 겁니다. 일 년 내내 이런 싸움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은 지겹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걸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도 용광로 더위와 뛰는 물가, 수해 복구로 힘든 국민입니다.

사실 글자만 보면 ‘내 탓'과 '네 탓'은 점 하나 차이입니다. 그런데 그 점 하나 차이가 우리 사회를 너무 짜증 나게 합니다.  왜 남 탓만 하며 사는 걸까요. 권력만 누리고 책임은 지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용기 있게 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진심 어린 반성에 대해 따뜻하게 용서할 줄 아는 사회로 거듭나야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 속의 조형물을 다시 한번 볼까요.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손가락 하나지만 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손가락은 셋입니다. 그것은 ‘네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이 아닌지 먼저 생각해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보다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 된다면 지금처럼 온 나라가 시끄럽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내 탓이오.”라고 하셨던 말씀이 그립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그런 어른이 필요한  때입니다.  새삼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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