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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넌 어쩌다 개나리가 되었니?

by 훈 작가 2023. 9. 22.

‘개-’로 시작되는 말을 보면 좋은 표현이 없다. 예를 들면 이렇다. 상대방에게 기분 나쁠 때 불쑥 툭 튀어나오는 욕부터가 ‘개 XX’다. 질서가 없는 상황을‘개판이다.’라고 하고, 마음에 썩 달갑지 않을 때 ‘개떡 같다.’라고 한다. 이외에도 개망신,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소주, 빛 좋은 개살구, 개차반, 개구멍 같은 표현도 떠오른다.

 

뜬금없이 ‘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봄 분위기와 어울리는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 집을 나섰다. 도로변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꽃을 보고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때 한 남자가 강아지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간다. 순간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우연히 담은 사진이다. 

 

SD카드를 컴퓨터에 꽂고 사진 파일을 불러왔다. 개나리꽃 길에 몰티즈로 보이는 반려견 산책시키기 위해 나온 남자가 보인다. ‘개나리와 강아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개와 개나리가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리’가 아니고 ‘개나리’일까?     

 

검색해 보니 ‘개나리’는 ‘나리’에 접두사 ‘개-’가 붙은 것이고, ‘진달래’는 ‘달래’에 접두사 ‘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나리꽃은 나리꽃인데, 그보다도 작고 좋지 않은 꽃이라고 해서 ‘나리’에 ‘개-’를 붙인 것이고, 달래꽃은 달래꽃인데 그보다는 더 좋은 꽃이라고 해서 ‘진-’을 붙인 것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다. 

 

‘개-’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는 표현은 개(犬)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혹시나 개(犬)를 뜻하는 말일까 해서 개나리꽃 이름을 검색해 본 것이다. 다행히 개나리꽃의 ‘개-’는 개(犬)가 아니었다. 개나리꽃의 ‘개-’가 개(犬)가 아닐지라도 하필이면 왜 꽃 이름 앞에까지 ‘개-’를 붙여 놓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개-’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왜 부정적인 의미로 사람들 입에 오를까? 그다지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어쩌다 개가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세상이 슬프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개(犬)’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개나리꽃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칭할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다.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진 한 장을 보고 묘한 기분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개나리꽃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개나리꽃이 애꿎은 ‘개(犬)’로 취급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넌 어쩌다 개나리가 되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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