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아포리즘

조약돌

by 훈 작가 2023. 9. 16.

강물이 흘러갑니다. 거칠고 사납게 흘러갈 때 저도 함께 휩쓸려 갔습니다. 세찬 물살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고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정신 차릴 수도 없습니다. 심한 경우에 정신을 잃고 며칠 동안 앓아눕습니다. 

어느 날 눈 떠 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물입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던 상처가 아물 때 여기가 어딘지 살펴봅니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닙니다. 흐르는 물이 나를 다른 세상으로 옮겨 놓은 겁니다. 온순해진 물이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천천히 지나갑니다. 물은 원래 내 모습을 시간의 무덤 속에 묻고,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옛 생각이 납니다. 한적한 시골의 한 개울가 생각이 납니다. 폴짝폴짝 징검다리를 건너던 소년이 멈추더니 물속의 저를 집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저를 물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던졌습니다. 저는 바람을 가르며 잔잔한 수면 위로 미끄러지며 몇 번 퉁겨지다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제가 살던 징검다리 근처에서 멀고 험한 곳으로 가게 것입니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강물과 함께 흘러간 시간, 나는 그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삶을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젊은 날 까칠했던 성격 때문에 다투었고, 마음이 송곳 같아 남과 부딪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랬던 저를 흐르는 물이 곱게 깎아내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제야 세상을 알 것 같습니다.


'Photo 에세이 > 아포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을 보면서  (0) 2023.11.03
넌 어쩌다 개나리가 되었니?  (10) 2023.09.22
외로워요.  (8) 2023.09.08
아침 해가 보고 싶다  (0) 2023.07.15
난감하네!  (0) 2023.07.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