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라떼별곡

사는 게 뭔지

by 훈 작가 2023. 12. 14.

사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딱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질문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연히 살고 있는데, 사는 게 뭔지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뭘까. 누군가는 “골치 아프게 뭘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아, 먹고살기 바쁜 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의외로 정답은 간단합니다. “먹고살기 바쁜데.”라는 말속에 힌트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는 건 먹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사는 건 먹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어떻게 사는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부호가 찍히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을 한 겹, 두 겹 벗겨 보면 궁금해하는 의문을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먹는다." 동사의 기본적인 의미는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뜻입니다. 생존의 기본입니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사는 것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사는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눈으로도 먹고, 냄새를 맡아보고 먹고(코), 소리를 듣고(귀) 먹으러 갑니다. 때에 따라서는 본의 아니게 눈칫밥도 먹고, 누가 남몰래 먹고 있으면 낌새를 알아채고 먹으러도 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동물과 달리 오감으로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고,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면 입보다 코로 먼저 먹게 되고, 여름에 옆에서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만 들어도 침샘을 자극해 군침이 돕니다. 이런 자극이 뇌에 전달되어 우리는 식욕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먹는다.”라는 것은 입뿐만 아니라, 눈, 코, 귀를 포함한 감각이 다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먹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겁니다. 


최근 TV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회적 사건이 있습니다. 이른바 전세 사기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을 등쳐먹거나 속여 먹고사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쉬운 말로 배워 먹지 못해 욕먹고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음의 양식(糧食)을 제대로 배워 먹지 못해 사람이 지녀야 할 양심을 버린 추악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양식을 제대로 배워 먹고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데,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한 인간쓰레기 같은 사람들입니다.

양식은(糧食) 생존을 위한 먹거리이기도 하지만, 양식(良識)은 사람답게 사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필요한 도덕적인 판단 능력과 식견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먹어야 하는 양식(糧食)입니다. 양식(良識)은 사람다움을 만듭니다. 마음에 이것을 채우지 못하면 사람다움이 부족해 많은 이웃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반대로 마음에 양식(良識)이 풍부한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며, 세상을 밝게 해 줍니다. 


누구든 사는 게 뭔지 12월이면 확실히 알게 됩니다. 싫어도 먹어야 하는 때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쉴 새 없이 세월을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면 일 년이란 세월을 묶어 나이를 먹습니다. “도대체 사는 게 뭔지.” 하면서 또 한 살을 먹게 됩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어느덧 한 해의 종점입니다. 해 놓은 건 없고 나이만 먹게 되는 느낌이 드는 때입니다. 결국 “사는 것은 먹는 거구나.”하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세월을 먹는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는 먹는다.”라고 합니다. 모순적인 표현 같지만, 모순적이지 않습니다. 나이는 하루하루 삼시 세끼를 먹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키워낸 결실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먹은 것은 곧 음식이자, 곧 세월입니다. 따라서 “사는 것은 곧 먹는 것이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Photo 에세이 > 라떼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의 미학  (122) 2023.12.21
고독과 만나는 계절  (116) 2023.12.16
몽환적인 빛  (132) 2023.12.13
빅뱅  (7) 2023.11.25
친구  (6) 2023.11.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