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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몽환적인 빛

by 훈 작가 2023. 12. 13.

12월을 들뜨게 만드는 이유는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거리엔 성탄절 캐럴이 흘러나오고, 도심의 번화가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합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도 이때 등장합니다. 밤이 되면 백화점이나 교회, 성당 건물은 온통 멋진 조명등이 현란하게 반짝입니다. 게다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기분도 업로드됩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 탓인지 눈 오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겠지만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어디까지나 날씨는 자연현상이므로 신의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꿈을 이번에도 가져봅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나만은 아닐 것입니다. 


꿈. 어쩌면 현실 세계에서 마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되어 만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꿈은 포기할 수 없는 단어가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때론 보이지 않고 잡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꿈, 우리는 이 같은 꿈을 날마다 먹고, 날마다 꾸고, 날마다 마음에 그리며 삽니다. 이처럼 꿈은 삶의 존재 이유이며, 삶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 꿈이 작고 하찮을지라도 꿈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꿈과 환상이 만나 생긴 말이 있습니다. ‘몽환적이다’라는 말입니다. 비현실적이라는 뜻일 겁니다. 빛은 현실 세계의 모든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빛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빛을 꿈과 환상의 세계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반사되는 빛이나 조명 빛을 있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게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이 모호하게 보이게 만드는 겁니다. 


사진은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된 불빛을 찍은 사진입니다. 하지만 전구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전구 뒤쪽에 맞춘 다음 피사체의 심도를 얕게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찍으면 전구의 빛이 흐려지면서 동그랗게 표현되는데, 이를 사진 용어로 보케(bokeh)라고 합니다. 카메라 렌즈 초점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아웃포커싱 (피사체의 배경을 흐리게 만드는 것)하여 찍은 사진입니다. 

몽환적인 빛이라고 한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말과 3학년 초, 두 번의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수술대에 누워 있을 때 밝은 조명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언제 마취가 되었는지 잠이 들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옮겨져 마취에서 깨어날 때 빛이 생각납니다. 그때 눈꺼풀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마치 보케처럼 보였습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던 동그란 빛이 그랬습니다. 

그때 보았던 빛, 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꿈의 끝에서 고통과 함께 만났던 빛이 몽환적인 빛이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몽환적인 빛은 낭만적일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빛일 겁니다. 말 그대로 몽(夢)은 꿈이고, 환(幻)은 헛보일 환입니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빛이 아닙니다. 비현실적인 세계, 즉 상상이나 공상의 영역입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을 두고 하는 표현일 겁니다. 

‘몽환적이다’라는 표현은 듣기만 해도 로맨틱한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2 기말고사도 못 치르고 병실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던 아픈 그날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몽환적인 빛이 아니라, 그냥 하얀 눈과 어우러진 루돌프 사슴의 코처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의 앙증스러운 빛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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