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청봉에 첫서리가 내렸다네요. 아니 벌써! 서리는 절기상으로 상강(霜降:10월23일)이 되어야 내리는데 뜻밖이었습니다. 가을이 오자마자 겨울이 오려는 건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가을이 지각했습니다. 혼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슬그머니 안 그런 척하며 반갑게 포옹했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녀석도 늦고 싶어서 늦었겠습니까.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 낀 가을이 기죽어 힘들었나 봅니다. 여름에 밀리고 겨울이 치이다 보니 제 몫을 다 챙기지 못하고 갈수록 짧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계절 중 가을이 제일 마음이 여려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가을은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시어머니 같은 여름과 까칠한 시누이 같은 겨울 사이에 끼어 고생하는 걸 알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와중에도 가을은 풍요로움을 주고 힐-링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가을이 더 멋집니다.
가을을 기다린 시간이 길긴 했지만, 한시름 덜었습니다. 혹시 태풍과 같이 오면 어쩌나 했었죠. 다행히 올해는 다 중국이나 일본 쪽으로 갔으니까요. 그래도 일부 지역에서는 기상이변에 따른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가 많았나 봅니다.
지난 여름 모두 힘들었습니다. 이젠 그 녀석이 남긴 상처를 함께 보듬어 줄 때입니다. 그리고 이 가을, 다같이 누렸으면 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모두에게 더 행복하고 풍성한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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