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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빨강, 노랑, 초록

by 훈 작가 2024. 12. 4.

빨강은 충동적이고 흥분을 잘하죠. 야망이 크다 보니 모든 일에 최고가 되길 원합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좌충우돌할 때가 많습니다. 말썽꾸러기죠. 성취 욕구가 강하고 다혈질이며, 성공 지향적이다 보니 언제나 시한폭탄입니다. 빨강이 격정적인 욕망을 드러내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초록은 빨강과 달리 차분합니다. 상대적으로 빨강과는 정반대라고 보면 됩니다. 너무 긍정적이어서 탈입니다. 그래서 초록은 화를 내거나 말썽을 피우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을 품고 성장시킵니다. 모두에게 늘 편안함과 휴식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누구든 힐-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빨강이 빛을 타고 지구별로 내려왔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보나 마나입니다. 녀석이 최고의 자리에서 지배하려 난폭하게 굴었습니다. 초록이 잔뜩 겁을 먹고 긴장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초록을 자신의 색으로 바꾸려고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빨강이 초록을 겁박하려 들었습니다.
 
그때 정체불명의 누군가 나타났습니다. 싸움을 말려고요. 사이좋게 지내도록 설득하려 온 겁니다. 서로 반반씩 양보해 같이 좋게 지내는 게 어떠냐고 좋게 말했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색을 잃는다고 말이죠. 빨강과 초록이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고.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강 반쪽, 초록 반쪽을 나에게 맡겨, 그러면 서로 같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빨강과 초록이 각각 반쪽을 주자, 그가 그걸 받아 걸쳐 입었습니다. 그 순간 감쪽같이 빨강과 초록이 사라지면서 노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정체를 드러낸 노랑이 말했습니다.
 
“너네, 둘이 나를 만든 거야. 내 안에 빨강과 초록, 두 영혼이 함께 있는 거지.” 빨강과 초록은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빛입니다.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노랑은 빨강과 초록의 빛이 만들어낸 사랑이자 행복입니다. 가을에 만나는 단풍도 빨강만 있거나 초록만 있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 공존하면서 어울려야 더 아름답습니다. 빨강, 노랑, 초록이 공존하는 신호등처럼 자연도 공존의 질서가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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