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사랑과 열정이 만든 몸부림의 산물입니다. 태양을 향한 애틋한 짝사랑이자 숨길 수 없는 격렬한 감정입니다. 빛은 그 감정을 안아줍니다. 소란스러운 질투와 시기가 자칫 보기 싫은 모습을 보일까 봐, 달래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야 꽃들이 거리로 나서 파업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꽃들은 지난여름내내 뜨거운 태양과 함께 탱고 리듬에 맞추어 춤추고 열정을 발산하며 모두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나는 그런 꽃들이 부러워했습니다. 늘 지켜보고 눈물로 지새우며 보냈죠. 한편으론 뜨거운 사랑이 무섭고 겁났습니다. 그래서 여름 내내 숨어서 지냈습니다. 사랑이란 식으면 다 떠나잖아요. 이별의 아픔도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사랑해선 안 될 사랑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지요. 그러다 보니 난 뜨거운 사랑보다 차가운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꽃일 수밖에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사랑하지 못하는 운명이죠.
세상의 모든 꽃이 진 늦가을, 나는 빙점 아래에서 머물던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잠에서 깨어납니다. 때가 된 겁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쯤 될 겁니다. 나는 우주를 떠날 결심을 하고, 북극으로 내려옵니다. 별빛은 하얀 여행자가 되어 어둠 속으로 스며듭니다. 뜨거운 사랑만 꽃을 피우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사랑이 빙점 아래에서도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때가 된 겁니다.
나는 사랑이 없을 것 같은 가장 차가운 땅을 찾아 어둠 속을 날아다닙니다. 뜨거운 사랑이 외면한 곳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여름 내내 꽃이 피지 않던 곳이죠. 헐벗고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 어딘가에 있거든요.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번도 꽃구경을 하지 못한 그곳에 꽃이 되어 주는 일이거든요. 난 가슴이 차갑지만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꽃입니다. 사랑받지 못하지만 나도 꽃입니다. 아시나요? 서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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