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나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때’를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친구는 내게 언제였냐고 물었습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언제였을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딱히, 언제였는지도 모르겠고,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도 없었습니다. 일단 잘 모르겠다고 받아넘겼습니다. 소주 한잔을 넘기며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때가 있기는 했었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가장이란 최상급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입니다.

친구와 헤어진 후에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진짜 이유가 뭘까. 수많은 과거의 기억 속에 저장된 ‘행복’이란 폴더를 클릭해 파일 하나하나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찾기가 쉽지는 않을 듯했습니다. 그날 친구가 말한 말을 곱씹어 보면서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표현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답을 찾았습니다. 별로 의미가 없는 표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답을 찾으려면 내 인생의 과거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때는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게 철없던 20대 시절 일 수도 있고, 앞만 보고 달리던 30대나 40대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몰랐던 행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흔한 말로 산전수전 다 겪어 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진정한 인생의 행복을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적어도 인생 60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생의 끄트머리에서 절정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꽃이 핀다는 것은 곧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말할 겁니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은 없듯이 인생의 꽃도 인고(忍苦)의 시간이 지나야 절정에 이릅니다. 쓴맛을 모르면서 단맛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려울뿐더러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화양연화가 어떤 때인지 구체적으로 말 할 수 없습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표현의 핵심은 행복입니다. 단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행복이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목적지가 없는 명사입니다. 그럼에도 현재보다 과거동사가 붙은 행복이 많을 겁니다. 화양연화도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 없는 행복을 현재형으로 만드는 겁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행복을 만드는 겁니다. 인생은 언제나 진행형 동사와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화양연화보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오늘의 행복이 나는 화양연화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 세상을 살다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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