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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봄 타지 마세요

by 훈 작가 2025. 3. 20.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꽃샘추위가 이젠 물러갔나 봅니다. 앙상한 산수유 나뭇가지에도 움트는 새싹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환하게 웃고 나올 겁니다. 공원 산책길에 자전거 타는 사람도 눈에 띕니다. 놀이터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도 들립니다.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노인도 보입니다.
 
순간 종로 2가 탑골공원 풍경이 떠 올랐습니다. 노인 분들의 성지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그곳을 지나노라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풍경인지 잘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닙니다. 나이 들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공원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탑골공원은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외로움을 피해 나오는 곳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5명 중 1명은 일상화된 외로움 속에서 산다고 합니다. 고령화로 가족이나 친구가 줄어드는 노인이 늘어갑니다. 1인 가구도 증가 추세에 있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시대가 바뀌어 사람과 대면하는 시간이 줄고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뭔가를 주문하려면 키오스크 앞에 서야 합니다. 예전엔 종업원이 와 주문을 받았는데…. 고속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해도 예전처럼 예매 창구가 많지 않습니다. 은행 창구도 그렇고, 공공기관 민원창구에 가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갈수록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일이 줄어들 걸로 보입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디지털 문명이 만든 시스템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서로 대면하는 시간과 공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시간과 공간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건 교류나 관계가 단절됨을 말합니다. 세상은 시간적 공간적 거리가 멀어지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갈증이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혼자 타는 심리적 갈증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아는 두 사람이 있다면 외로움을 탈 수 없습니다. 시시콜콜한 주제라도 서로 수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 홀로 있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외로움이 스며드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세월의 바퀴는 굴러갑니다. 내가 페달을 밟지 않더라도. 이제 막 겨울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봄 들녘을 달리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 터널을 지날 겁니다. 희망의 봄을 노래하는 온갖 생명들이 환희의 찬가를 부르며 환호할 겁니다. 그들에겐 외로움이 없기에 봄의 행복만 가득할 겁니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즐기는 즐거움이라고. 인생 여정은 자율주행 차량을 타듯 이미 가는 방향과 목적지가 내비게이션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봄 아닌 봄을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봄 대신 자전거타고 봄과 데이트해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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