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봄입니다.'
숲을 안고 자던 안개가 말했다. 초록이 내릴까 살펴본다. 엊그제 내린 춘설(春雪) 때문에 망설였다. 내리려는 찰나에 아직 한 정거장 남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개 때문에 잘 모르겠다.
안개가 다시 말했다. 이젠 정말 내려도 된다고. 진짜 봄이라고. 고개를 내밀어 바람을 만져 본다. 밖은 쌀쌀한 것 같은데 다 왔다고 한다. 하지만 숲과 들에 생기가 돈다. 시냇물과 바람이 초록에게 말을 건넨다.
'안개가 한 말이 맞아. 믿어도 돼.'
고향 언덕을 넘나들던 예전의 봄과 다르다. 그 시절 만나던 안개는 꽃이 펴낸 향기가 숲을 덮고 들녘까지 내려와 봄을 알리곤 했다. 그때도 여기부터 봄이라고 했다. 한데 헷갈린다. 정품 같기도 하고 짝퉁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애매한 행동과 모호한 표정으로 안개는 겨울잠에 취한 새싹들을 깨우며 봄을 알린다. 고요한 숲에 꿈과 낭만의 봄을 준비하느라 안개는 동분서주했다. 새벽부터 봄의 향연을 위한 리허설까지 모두 마친 상태다.
그러나 축제의 무대는 썰렁했다. 그래서 초록은 머뭇거렸다. 봄이라 말하는 안개의 말을 의심했다. 항상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아 주저했다. 행여 또 봄 같지 않은 봄일까 봐 초록은 주저한다. 안개의 정체성 때문이다.
안개는 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초록은 그러려니 하며 창밖을 본다. 여명 속에 계란 노른자 같은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실루엣 같은 어둠이 안갯속으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다. 우윳빛 안개 세상이다.
아침이 일어난다. 창을 열었다. 숲과 어우러져 로맨틱한 밤을 보낸 안개가 아침 해를 만나러 마중 나간다. 몽환적인 풍경이 연출되면서 다시 안개가 떠오른 태양과 손잡고 나오며 초록에게 다시 말했다.
'여기부터 진짜 봄입니다.'
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