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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어둠 속에 핀 꽃

by 훈 작가 2023. 4. 9.

 

사진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습니다. 목련꽃은 어쩔 수 없이 아래에서 위로 찍게 되죠. 벚꽃도 비슷합니다. 이처럼 사람 키보다 높은 나무에 피는 꽃의 윗부분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꽃이라도 어느 위치에서 찍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죠. 사람도 키가 커 보이게 찍으려면 아래에서 위로 찍는 거와 비슷한 거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진도 좀 더 아름답게 찍으려면 그런 관점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아파트 현관 옆에 있는 목련꽃 사진입니다. 그늘 진 곳이죠.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포인트에 자리 잡고 있어 지날 때마다 눈 맞춤만 했습니다. 다른 목련꽃이 이미 다 진 후에 피어 볼 때마다 안쓰러운 느낌도 들었고요. 꽃이 햇빛을 볼 수 없는 곳이라서... 어느 날 창을 열고 13층에서 내려다봤습니다. 그늘 속에 풍성하게 핀 꽃들이 활짝 미소 짓는 것 같아 얼른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흑백사진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거 있죠. 단순하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절묘한  조화라 생각했죠. 모든 색이 사라지고 검은 바탕의 흰색만 표현되었습니다.

흑과 백은 대립으로 상징되는 언어입니다. 하지만 사진에서는 조화를 이루는 미학의 언어입니다. 흑과 백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갈등하는 세상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갈등을 녹여 서로의 다름을 잘 조화시켜 나갈 때 보다 나은 미래가 열립니다. 그를진 곳에 핀 목련은 이 봄을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자리에서 봄을 만났고 다른 목련보다 늦게 꽃을 피웠을 뿐입니다.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습니다. 대립은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은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뿐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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