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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봄비

by 훈 작가 2023. 4. 16.

 

4월은 유독 눈물로 얼룩진 달입니다. 왜냐하면 눈물로 기억되는 아픈 일이 많잖아요. 9년 전 세월호 참사가 그렇고, 역사적으로는 4.3 사태나 4·19 혁명이 있었습니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지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깊이 스며드는 눈물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4월은 봄 속에 묻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는 아이러니한 일이 많습니다. 영화로 많은 관객을 울렸던 타이타닉호도 1912년 4월 15일(현지 시간 한국시간으로는 4월 16일) 침몰되었다고 하네요. 무려 1,513명이나 되는 목숨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죠.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도 4월 16일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범인이 재미 한국인 조승희로 알려져 사회적으로 충격과 파장이 매우 컸던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렇게 아픈 상처도 그렇게 아픈 기억도 세월이 가면서 잊게 되니까요.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럴까요. 아닐 겁니다. 잠시 잊고 지냈어도 홀연 4월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일 겁니다. 차라지 4월이 없었으면 할지도 모릅니다. 그 아픈 기억을 망각의 늪으로 버려야 하는 데 그게 4월이면 되살아나 4월이 영원히 잔인한 달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4월은 꽃을 피우는 것을 잊지 않고 봄의 날개를 타고 우리 곁에 옵니다. 혹독한 겨울, 얼어붙었던 대지가 봄과 입김을 받아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생명의 싹이 움트고 꽃과 풀이  피어나는 4월입니다. 춘삼월이 지나고 4월의 문턱을 넘게 되면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유채꽃, 튤립, 수국 등 꽃의 향연이 펼쳐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언제 그런 슬픔이 우리 곁에 있었냐는 듯 봄꽃의 빠져 혹독했던 겨울의 아픔을 잊습니다.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어떤 슬픔이나 아픔도 영원히 안고 살 수 없습니다. 잊을 건 잊고 기억할 건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망각이 없다면 삶은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에겐 눈물이 있습니다. 슬픔의 상징이자 아픔의 언어이죠. 일 년 중 오늘은 기억하되 내일은 지웠으면 합니다. 고통을 씻어내고 희망의 싹을 키워내기 위해서입니다. 봄비가 그날의 슬픔을 생각나게 합니다. 튤립에 젖은 봄비가 아픔을 씻어주는 눈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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