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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프롬나드 데 장글레

by 훈 작가 2023. 4. 11.

마세나 광장에서 해변까지 걸어서 2~3분 정도였다. 해변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눈에 들어왔다. 산책로로 보이는 도로가 해변과 같이 동서로 길게 모습을 뻗어있다. 바닷가 쪽으로 벤치에 앉아 지중해 태양을 즐기는 사람이 여유로워 보였다. 난간이 산책로 바다 쪽 끝에 설치되어 있다. 난간 아래 해변부터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까지 어림잡아 40m 정도쯤 될 것 같다. 이른 아침인데 산책로에는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애견과 같이 산책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해변 쪽에도 몇몇 사람들이 지중해 태양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 해가 역광으로 비추고 있어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의 풍경이 실루엣 피사체를 만든다. 카메라를 들었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 줌을 조절해 보았다. 강렬한 느낌은 없다. 하지만 산책로의 풍경이 괜찮아 보였다. 썩 마음에 드는 그림은 아니지만 느낌이 있는 풍경이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무엇인가 하나 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으러 셔터를 눌렀다. 산책로에서 다양한 풍경을 담아내는 셔터 소리가 퍼져나간다. 일단 찍고 보아야 한다. 일종의 실험정신이다. 그런 시도는 새로운 배움이다. 사진은 이론보다는 실전을 통한 감각의 습득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순간은 아주 훌륭한 배움의 현장이다. 여행은 사진을 배우는 가장 훌륭한 교본이다.

해변 쪽으로 내려갔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밭이다. 지중해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몽돌에 부딪치며 잔잔한 바다의 교향곡을 만든다. 그 소리가 바닷가의 추억을 만들어 내는 음악처럼 들렸다. 거센 파도가 아니라서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여행은 그만큼 사람의 가성을 여유롭게 해 준다바닷물 위로 햇빛이 반사되면서 하얀 다이아몬드 빛이 반짝인다. 아침 해가 눈이 부시다. 사진을 찍어 보니 은은한 달밤의 분위기처럼 보였다. 역광을 받은 지중해는 잔잔한 호수같이 보였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조그만 달빛같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 빛이 갈라지면서 별빛처럼 내려온다. 풍경에 취해 카메라에서 한동안 손을 놓지 않았다. 사진은 참으로 묘하다. 사진은 빛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그 차이가 너무도 다르게 표현된다. 캘빈 값과 화이트 밸런스(WB) 조작에 따른 느낌이 다른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바닷가로 더 가까이 가 보았다. 갑자기 밀려오는 파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신고 있는 운동화를 흠뻑 적시고 달아났다. 이미 눈치챘을 때는 늦었다. 사진의 묘미에 빠져 넋이 나간 틈을 파고들어 나를 약 올리듯 파도가 저 멀리 도망갔다. 하지만 그런 파도가 밉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아내의 얼굴만 겸연쩍게 보았다. 아내에게는 그런 시간이 너무 지루했나 보다. 게다가 햇빛을 피할 수 없어 곤욕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그늘이 없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산책로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몽돌을 밟으며 서서히 해변을 벗어나 산책로 위로 올라갔다. 아내에게 산책로에 있는 의자에 앉게 하고 몇 장의 사진을 담고 산책로 서쪽으로 걸었다.

산책로에 설치된 한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나 산책로의 상징처럼 사람 높이의 대리석 위에 의자 모양의 조형물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서 있었다. 아쉬움이 없도록 산책로의 풍경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나 아내에게는 별다른 흥미를 주지 못한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여자들은 태양을 싫어한다. 니스의 해변과 영국인의 산책로는 태양을 즐기는 사람에겐 낙원이겠지만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미안한 마음으로 산책로를 벗어났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라는 뜻으로, 1800년대에 영국 귀족들이 추위를 피해 니스를 찾으면서 영국인들에 의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1931년에는 영국 왕실에서 해안가를 따라 종려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책로의 총길이는 해변을 따라 약 3.5km 정도 된다고 한다. 산책로는 콘크리트 도로다. 그렇게 운치 있는 느낌이 드는 도로는 아니다. 해변을 끼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괜찮은 느낌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해 주기 때문에 느낌이 다를 수 있다.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거리에는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고 호텔 전용 해변도 있어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억만장자 빌게이트도 니스에 집을 갖고 있으며, 세계적인 톱 모델 킴 카다시안, 브루나이 국왕까지 이 도시를 거의 매년 찾고 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명소는 산책로의 동쪽 끝에 위치한 호화로운 벨에포크 풍 럭셔리 호텔이 네그레스코 호텔이라고 하는데 눈에 확 띄는 흰색 외관과 분홍색의 돔 형식 지붕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눈요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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