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풍차 마을

by 훈 작가 2023. 3. 8.

 

명작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크리스가 우리 일행에게 경품을 걸고 퀴즈를 냈다. 경품으로는 스페인 전통 과자 ‘뚜론’과 ‘와인 한 병’이었다. 퀴즈는 그간 크리스가 투어 안내를 하면서 설명한 내용을 귀담아들었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답은 반드시 손을 들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가 누구인지 이름을 맞히는 것이었다. 양양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부부가 주인공이 되었다. 정답은 엘 그레코, 프란시스코 고야, 디에고 벨라스케스였다. 두 번째 문제는 기원전 3000년경 지중해 동쪽의 시리아 중부 지방에 건설한 도시 국가로 항해술이 뛰어나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였으며, 오늘날 영어 알파벳의 모체가 된 문자를 그리스에 전한 도시 국가 이름을 알아맞히는 문제였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페니키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온 여교사 팀 중 한 분이 손을 들지 않고 먼저 ‘페니키아’라고 말을 해버렸다. 크리스는 손을 들지 않고 정답을 말한 여교사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정답자로 결정하면서 내게 와인 한 병을 주고 갔다. 나는 여교사팀에게 양보하겠다고 했더니 어디까지나 룰은 룰 이라면서 다시 제자리로 갔다. 졸지에 와인 한 병을 퀴즈 경품으로 받았다.

눈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스페인은 올리브 생산 1위 국가라고 한다. 풍차마을로 가는 도중에 가장 흔하게 보였던 것이 올리브 나무였고 그다음이 포도나무였다. 그런 풍경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희미하게 지평선 끝 쪽으로 언덕이 보이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라만차 평원의 콘수에그라 풍차마을에 다 온 것이다. 마을 도로는 매우 좁았다. 투어버스가 도저히 한 번에 꺾어 진입하기 어려운 길목을 노련한 운전기사가 서서히 회전하며 언덕으로 올라갔다. 버스가 주차장에 멈추기 전에 크리스는 바람막이 옷을 입고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우리 일행에게 알려 주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황량한 벌판에서 불어온 바람이 거칠게 달려든다. 거대한 풍차가 기다리고 있다. 바람개비 같은 날개가 두 손 벌려 환영해 준다. 

라만차 평원은 스페인 중부 지방에 있는 해발 610m의 황량하고 메마른 고원지대이다. 스페인어로 라만차(La Mancha)는 “작은 숲과 잡초로 덮인 땅”이라는 뜻이다. 사방이 훤하게 뚫린 사통팔달의 드넓은 평야 지대다. 바람의 낙원이라 불릴 만큼 광활한 벌판이다. 그런 벌판에 덩그러니 언덕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하얀 원통 모양의 건물 지붕이 마치 아이스크림콘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그 몸통에 풍차가 달려 있다. 커다란 십자형 날개가 붙어있는 건물이 11개나 자리 잡고 있다.  언덕 아래로 ‘콘수에그라’ 마을이 있다. 하얀색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붙어있는 마을 남극에서 찬바람을 피하려고 몰려있는 펭귄들이 모습을 닮았다. 이곳이 소설 돈키호테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읽어보지 않은 돈키호테를 크리스는 차 안에서 말했었다. 소설에서 돈키호테는 풍차를 기사의 적인 거인이라 생각한 나머지 늙은 말 ‘로시난테’를 탄 채 장창을 치켜들고 돌진했다가 세차게 돌아가는 날개에 휘말려 로시난테와 함께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들판에 나뒹구는 장면을 말하면서 주인공을 단적으로 잘 설명하는 표현이라 이라 설명했다. 무모하지만 인상에 남는 말도 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사람은 살면서 꾸준히 많은 일에 도전한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은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성공은 도전 앞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키호테를 무모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다.

하늘에는 수채화 같은 흰색 구름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바람을 타고 흐르고 있다. 사진 찍기에 딱 좋은 날씨다. 풍차마을은 라만차 평원은 햇볕과 바람이 풍성한 곳이다. 끝없는 평야는 밀 농사를 짓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었다. 수확한 농산물을 처리하려면 방아를 찧을 풍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물레방앗간의 추억같이 풍차마을은 돈키호테의 추억이 깃든 마을일지도 모른다.  돈키호테의 흔적을 상상해 보지만, 내 눈에는 풍차가 거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까. 돈키호테의 무대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 리가 없을 것 같다. 별로 구경할 게 없다. 뜬금없이 돈키호테를 빗댄 건배사가 떠오른다.  많고,  크고, 탕하고, 크닉 좋은 사람.

언덕은 높지 않지만 이보다 높은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 머무르려 해도 바람이 너무 세차다. 자꾸 다음 여정을 재촉하는 느낌이다. 우리 겨울과 다르지만, 겨울철 농한기를 맞은 농촌 풍경과 비슷하다. 남는 건 사진뿐 인지 여기저기 포토존을 찾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여행을 즐기는 표정은 다르지만, 여행이란 단어 속에는 웃음이 묻어나는 즐거움이 있다. 그 속에 Happy 바이러스가 있는 모양이다. 

(스페인 돈키호테 풍차 마을에서)

'인생은 여행이다 > 남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2) 2023.06.05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4) 2023.05.26
구엘공원  (4) 2023.04.23
프롬나드 데 장글레  (2) 2023.04.11
샤갈이 사랑한 생폴드방스  (0) 2023.02.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