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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샤갈이 사랑한 생폴드방스

by 훈 작가 2023. 2. 25.

 
언덕의 시계탑이 나를 보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차창밖에 보이는 시계탑이 오전 10:25분이라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 버스는 다시 <코트다쥐르> 해안 길을 따라 달린다. <코트다쥐르> 해안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Marseille) 남쪽 툴룽(Tulong)에서 이탈리아 인근 국경 도시 망퉁(Menton)까지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을 말한다. '쪽빛 바다의 해안'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코발트 빛 지중해와 일 년 내내 내리쬐는 따뜻한 햇볕, 그리고 작고 예쁜 바닷가 마을이 어우러져 어딜 가나 여행자의 넋을 쏙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일찍이 그런 빼어난 경관과 기후 때문에 이미 18세기부터 영국과 러시아의 귀족들이 추위를 피해 찾는 휴양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해안을 따라 <아를>, <아비뇽>, <칸느>를 지나왔고 지금 <생폴 드방스>로 가고 있다. 그리고 <에즈>, <모나코>를 둘러보고 <니스>에 도착할 것이다.
 
칸느를 출발한 지 약 1시간을 달려 <생폴 드방스>에 도착했다. 지중해 코트다쥐르 해안 길을 따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한 시간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코발트 빛 지중해, 그 바닷가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 속의 마을이 만들어 내는 전원풍경을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유명한 예술가나 화가들이 왜 이곳을 찾았고 정착하며 작품 활동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남프랑스의 조그만 마을 <생폴 드방스>는 인구 3,500명에 지나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다. 
 


 버스에서 내려 샤갈이 사랑한 마을 <생폴 드방스>의 전경을 멀리서 보았다. 작은 성곽 안의 마을이다. 내가 방금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의 과거로 돌아가 <생폴 드방스>의 마을입구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보는 마을 풍경이 샤갈이 사랑했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표시판에는 바로 샤갈의 작품 <파란 풍경 속의 부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표시판 뒤로 보이는 중세시대의 마을이 내 마음속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이곳에서 머물면서 9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며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마네, 모딜리아니 등 많은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매혹적인 마을이다.

그림 속의 도시 위가 샤갈의 고향 “비테프스크”의 하늘을 나는 연인의 모습이라면, 이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의 <생폴 드방스>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샤갈이 추구한 색채의 승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파란색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전체 정경을 부드럽고 감미롭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첫 부인 벨라의 죽음 이후 두 번째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접어든 샤갈이 프랑스 남부의 온화함, 젊은 여인과 아이, 말, 닭 등 동물을 함께 등장시켜 새로운 상징적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그림해설 : 인터넷에서 옮김)
 


 <생폴 드방스>로 올라가기 전에 전망대에서 우리는 급한 마음에 저마다 <생폴 드방스> 전경을 각자의 휴대폰에 담느라 바빴고 또 그 마을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담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사전 몸 풀기였다. 산에 오르기 전에 올라야 할 산을 사전에 멀리서 한 번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분위기였다. 산으로 들어가면 숲이다. 숲 속에서는 산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 속에서는 나무만 보인다. 나무를 보면서 숲 전체를 볼 수는 없다. 우리 일행은 몸 풀기를 끝내고 서서히 숲 속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숲 입구에 도착하였다. 숲은 성벽이다. 멀리서 볼 때는 혹시 석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주 완벽한 성벽이다. 마을을 성벽으로 둘러싸고 있다는 얘기다. 성벽이라면 그 자체가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중세 시대의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추측도 배제할 수가 없는 곳이다. 그런 마을에 미술사에서 색채의 대가로 이름을 남긴 샤갈이 이곳을 찾아와 20여 년을 머물렀고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생각은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서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군사적인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이 마을을 정말로 잘 보존하고 관리를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벽에 잠시 동안 머물렀던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성벽이 오히려 시골 담장 같은 정감이 들었다. 집과 담장 사이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아담하고 소박한 작은 빵집이 보였고 그곳을 지나니 담장이 낮아졌다. 아기자기한 집들과 그사이에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오른쪽으로 낮아진 담장아래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마을이 나의 눈길을 잠시 멈추게 했다. 순간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와~ 정말! 남프랑스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답네.” 
 
아름답다는 것은 반드시 화려한 것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장미꽃처럼 한눈에 매혹되는 그런 아름다움은 아니다. 화려함이 아닌 분위기가 있다. 그런 것들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들고 있던 카메라로 그 감탄사를 담았고 그런 아름다움을 담았다. <생폴 드방스>만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속에서 만드는 행복과 추억을 담는 작업을 동시에 즐겼다. 동행하는 아내가 있어 기쁨 두 배, 두 사람이 같이 행복하니 만족 두 배까지 해서 모두 네 배의 추억을 만들었다. 거기에 여행의 향기가 묻어 나오는 웃음이 있고 여행이 만들어 주는 분위기와 한가로움이 있다.

흔히, 뒷골목 하면 보통사람들은 어떤 선입관이나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70~80년대 까지 골목길 하면 달동네 같은 서민적인 마을 풍경을 연상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폴 드방스 골목길의 풍경을 본다면 생각을 달라 질 것이다. 미로 같은 뒷골목으로 들어가 걷는다면 살림형편이 어려운 서민동네의 마음이 아파오는 슬픈 동정이 아니라 보름달처럼 포근하면서도 감성이 풍성해지는 시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생폴 드방스> 뒷골목의 정겨움은 내 가슴을 보름달처럼 만들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것들은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작고 단순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담쟁이덩굴로 단장된 담장, 문 앞에 놓인 화분, 창문 앞의 앙증스러운 꽃 화분, 하얀 담벼락의 빨간 꽃잎, 골목길 바닥에 꾸면 놓은 매혹적인 자갈그림 등이 그랬다. 화려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소박한 자연미가 더 인간적이다. 그것이 마음이고 그런 마음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동네다. 
 


<생폴 드방스>의 여정에서 힐-링의 분위기를 느끼는 산책을 했다. 가슴속으로 신선한 산소가 들어오고 봄 같은 겨울바람을 마시면서 걸었다. 그러는 사이에 마을 입구 반대쪽에 있는 공동묘지까지 왔다. 샤갈이 잠든 곳이다. 그곳을 찾았다. 보통의 돌무덤과 같이 평범했다. 그는 떠났지만 <생폴 드방스>와의 인연은 여기에 남아 있었다. “샤갈이 사랑한 마을”이란 수식어가 생폴 드방스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색채의 대가 샤갈의 무덤은 화려하지 않았고 마을 분위기처럼 소담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돌로 된 묘지마다 주변에 꽃 화분이 놓여 있었고 그 너머 멀리 지중해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을 나와서 우리 일행 모두를 인솔자가 잠시 불러 모았다. 인솔자가 잠시 <생폴 드방스>에 대한 간단한 도움말을 전해주었다. <생폴 드방스> 마을은 16세기의 만들어졌는데 중세의 고풍스러운 느낌들을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예술가들이 많이 찾아 정착해 살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그 후 그들의 작업장(아틀리에)겸 작품전시장(판매장)을 소유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곳이 70여 군데나 된다고 한다. 그 중심이 되는 골목길이 미라보 거리라고 하는데 구경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 여기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마다 유혹을 참기 힘든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한 시간 후에 우리 일행이 들어온 <생폴 드방스> 입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했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간판 하나, 문패 하  나도 예사로운 것들은  은 없다. 길가에 내걸린 엽서 한 장과 수공예품들도 큰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서 흔하게 접하는 것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모든 것이 작품이고 예술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꾸며 놓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하나 같이 <생폴 드방스>의 자존  심과 창작의 혼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담한 마을의 한가운데 골목길을 한 걸음씩 지  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그만큼 놓치고 싶은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연속이었다. 인내력이 한계에 다 달았을 때 한 아틀리에를 들어갔다. 조그만 공간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접시, 컵, 꽃병 등 여러 가지 수작업으로 만든 도자기들이 아름다운 색상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어느 작품에 눈을 두어야 하는 걸까? 이것도, 저것도 하나같이 예쁘고, 앙증스럽고, 독창적인 디자인이 시신경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윽고 매장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똑같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여행 기념으로 2개 정도를 사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고르는 것이 너무 어렵다. 딱히, 이거다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데 그것이 어렵다. 문제는 비용이다. 가격을 물어보니 최소한 30유로 이상이다. 정말 고난도 수능문제를 풀듯이 어렵게 하나를 선택했다. 빨간색상의 앙증스러운 조그만 꽃병이다. 혹시 몰라 가격을 깎아달라고 했더니 단칼에 NO다. 그는 파손방지를 위해 뽁뽁이로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주었다.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좁다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조그만 가게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단순한 가게라면 그냥 지나가면서 보면 대충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곳은 우리의 눈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어서이다. 매력이란 단어가 붙으면 눈은 커지고 심장은 뛴다. 크지도 않은 조그만 공간이 그토록 마음을 붙잡는 것은 그곳이 하나하나의 예술작품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림, 조각, 도자기, 신발, 포도주, 카페, 빵집, 레스토랑, 호텔, 담장, 창문 등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술작품이다. 이 마을은 예술작가 촌이고 문화공간이며 문화마을이다. 누구나 사랑에 빠져버리는 유혹의 공간이다. 멀리서 보던 <생폴 드방스>는 조그만 성안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막상 그 속을 들어와 보니 온갖 예술을 총망라한 예술작품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보니 사람의 정서를 흔들어 놓는다. 지금의 분위기에 좀 더 취하고 싶은 마음이 뇌세포를 자극한다. 이곳 <생 폴 드방스>에서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남프랑스 여정은 정말 매혹적인 코스다. 이어지는 <에즈>, <모나코>의 여정도 정말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표현이 적합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어제 <아를>에서 고흐의 자취를 더듬어 봤다. 그곳이 고흐의 마을이라면 이곳은 샤갈의 마을이다. 그러나 샤갈의 마을이란 수식어가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결코 이 마을은 샤갈이 독점할 수 있는 마을이 아니었다. 샤갈만 사랑한 마을이 아니라,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을이다. <생폴 드방스>를 사랑하는데 무슨 제약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평범한 사람이든 예술가이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마을이다. 또 이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런 면에서는 <아를> 보다는 오히려 <생폴 드방스>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우리는 숲 속을 빠져나왔다. 숲을 이루고 있는 여러 나무를 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나무들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는 일들 중에는 산을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일도 있고, 숲만 보고 산을 보지 못하는 일이 있다. 세상을 사는 간단한 진리인데 때로는 그것을 잊을 때가 있다. 여행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삶이란 틀 속에 묻혀 있다 보면 그 틀에서만 삶을 생각하고 보게 된다. 여행을 떠나 보면 그 틀에서 빠져나와 잠시 내 인생을 뒤돌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내 인생에 대한 더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되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각오도 새롭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안과 밖의 차이는 단순한 것 같아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깨달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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