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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남유럽

구엘공원

by 훈 작가 2023. 4. 23.

카사 밀라에 대한 현지 가이드 설명이 끝나자마자 구엘과 가우디에 대한 첫 인연부터 다시 말을 이었다. 구엘 백작은 쿠바에서 노예장사로 아주 많은 돈을 모은 귀족으로 그 당시의 대부호였다. 원래 구엘 공원부지는 역시 구엘 백작의 소유였다고 한다. 때마침 가우디가 1878년 파리 국제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스페인 전시관 진열장 디자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때 박람회 현장을 방문하여 전시장에서 가우디의 전시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던 까탈루나의 대부호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1846~1918)이 그의 천재성, 예술성, 독창성에 큰 관심을 끌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저택과 공원 등 그 외 바르셀로나 내 여러 건축물의 설계를 가우디에게 의뢰하였다. 이러한 인연이 이어지면서 구엘 백작은 가우디의 작품 활동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후부터 구엘 백작은 가우디의 열정적인 지원자가 되었다.

아낌없는 후원자 덕분에 가우디는 그가 가지고 있는 천재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가우디에게 있어서 독창적이라는 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었다. 그의 모든 건축물에는 이러한 모토가 깔려있지만, 그중에서도 '구엘 공원'은 그런 가우디의 생각이 집약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건축과 자연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스며든 '작은 우주공간' 같은 곳이라 이곳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름은 구엘 공원이지만 '가우디 랜드'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애당초 구엘은 이곳에 작은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펠라다 지역의 땅을 매입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하고 그리스의 팔라소스 산과 같은 신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곳에 60호 이상의 전원주택을 지어서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분양은 3채만 성사되어 실패로 끝나버렸다고 한다. 게다가 공원 땅은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아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했다고 한다. 그는 이 단지를 위해 무려 14년(1900~1914)이나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자금난 등으로 미완성으로 끝났는데 이것을 구엘 백작이 죽은 후 1922년 바르셀로나시가 이 땅을 매입해 다음 해에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 질 무렵에 구엘 공원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건너편에 아파트로 보이는 큰 건물에 반사된 석양(夕陽)이 식어가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시가지 너머로 지중해의 수평선이 깔린 모습이 보였다. 겨울 속에 늦가을 같은 날씨가 느껴졌다. 마치 초저녁 산책길에 나서는 기분이다. 

공원에 들어섰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인상적인 건물이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깔모자를 연상케 하는 기린 목처럼 기다란 굴뚝,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 같은 지붕, 돌담 같은 벽체, 둥글고 아담한 아이스크림을 퍼 담는 컵 모양의 작은 집이 앙증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어린 시절의 상상을 자극하는 동화 속의 그런 집이다. 어쩌면 동화 속의 세계를 현실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마침 그때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동화 속의 집처럼 보이고 벽은 소보르 빵 같다고 소근 대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헨델과 그레텔>이란 동화책이 무엇인지 몰라서 무슨 말인가 했다. 장난감 같은 집을 놓고도 보는 이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집이다. 바로 이런 것이 가우디의 천재적 독창성이 아닌가 싶다. 

아마 어린 자녀들과 같이 왔다면 빨리 들어가 보자고 아이들이 성가실 정도로 보챘을 것 같다. 그 집 앞에는 내부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어린아이도 많았다. 이곳은 예전에 공원의 수위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가 공원 위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구경해야 할 포인트, 이동 동선, 만나는 장소, 시간 등 몇 가지 사항을 알려주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이미 버스 안에서 공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미 다 설명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추가로 설명할 내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계단에는 카탈루냐 문장과 용의 머리가 있는 도롱뇽 분수가 있다. 역시 트렌카디스 기법(Trencadis : 타일과 유리, 거울 따위를 깨서 모자이크화)으로 만들어진 도롱뇽의 입에서는 끊이지 않고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신전 앞을 지키고 있는 듯 약간은 위협적인 표정으로도 보이고, 방문객을 맞이하듯 웃는 표정으로도 보였다. 계단 앞에서 사진을 먼저 찍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곳이 명당자리인 듯 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객이 많았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려 찍기로 했다.

여행 성수기 시즌도 아닌데 사람이 많았다. 특히, 귀에 익은 한국말이 많이 들렸다. 순서를 기다려 인증 사진을 담고 계단을 올라갔다. 여러 개의 둥근기둥이 위쪽의 전망대 광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기둥의 1/3은 부서진 타일 조각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타일이 부착된 기둥은 둥글지만, 기둥의 2/3는 각을 이루며 둥글게 기둥을 감싼 모양이다. 천정도 호수의 물이 부드럽게 파동을 이루는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곳도 부서진 타일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일부러 타일을 조각내어 붙인 것인지, 아니면 부서진 타일을 수거하여 재활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곳은 가우디가 건축 당시 이 지역이 주택단지일 경우를 감안해서 디자인한 공간이라고 한다. 주민들의 '시장(市場)'으로서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공간으로 다 주실(sala hipostila 기둥을 많이 세운 홀)이라고 불렀다. 기둥이 무려 90개가 넘는데 고대 그리스 신전과도 같은 느낌을 주도록 도리아 양식을 응용했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 왼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특이한 돌기둥이 비스듬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돌기둥은 천정과 곡선을 이루며 축대 모양의 벽과 함께 일체감을 주면서 길게 터널 같이 이어져 있다. 빛과 돌의 조화가 이루어 낸 조형미를 가우디가 독특하게 독창성을 표현한 곳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돌에도 예술의 혼이 들어가면 작품이 된다. 단순한 돌의 집합체가 기둥과 곡선을 이루며 중세의 신전처럼 보였다. 

가우디에게는 돌은 하나의 자연이었고 자연을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럽게 재구성하여 예술의 경지에서 창조적 작품을 만들어냈다. 나는 가우디의 예술적 재능에 대해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끌어낸 곳이 구엘 공원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의 타고난 천재성, 독창성, 예술성에 놀랄 따름이다.

광장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 지중해가 보였고 바르셀로나 시가지 모습이 구엘 공원 앞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화려한 도심의 모습이 아니다. 도심의 모습은 어쩌면 동화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동네 같다. 구엘 공원 랜드마크 같은 고깔모자 모양의 굴뚝 위에 십자가는 이곳이 신이 사는 천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광장의 끝 쪽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구엘 공원의 정취에 젖어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한쪽에는 사람들이 광장의 경계를 이루는 난간에 타일을 붙여 의자처럼 만들어 이곳에 앉아 있었다.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며 광장의 난간에 붙인 타일과 유리 장식의 의자는 동심을 자극하는 동화적, 환상적 요소를 가미했고 아라비아풍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장식은 카탈루냐 스타일인데 트렌카디스 기법(Trencadis : 타일과 유리, 거울 따위를 깨서 모자이크화)이라고 한다. 

타일 파편 하나하나가 모여져 모양이 불규칙하면서도 창의적인 패턴이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이것이 가우디의 천재적 독창성이다. 그러나 구엘 공원의 모든 것이 다 가우디의 손을 거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난간 부분은 가우디의 수제자였던 Josep Maria Jujo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큰 틀과 방향(Concept)은 가우디가 잡았지만, 그의 제자들도 일부 참여하여 그들의 아이디어도 구엘 공원에 담겨 있는 것이다.

광장 주위에는 휴대폰을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인증 사진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슬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 여성이 휴대폰을 가져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나는 웃으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가 찍고 싶은 자리에는 아까부터 덩치 큰 젊은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덩치 큰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도 카메라를 주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아마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사진 좀 찍는가 보다 생각한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다 찍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이 그렇다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아내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며 명당자리에서 사진을 몇 장을 찍었다.
 
그곳에서 바르셀로나를 바라보며 찍은 전경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못내 이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다. 아무리 봐도 명당자리다. 그냥 말없이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쳐다보았다. 바르셀로나 시내 너머로 지중해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가에 하얀 구름이 아름답게 석양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지중해와 바르셀로나는 환상적인 궁합이고 조화다. 

바르셀로나 중심에 “가우디”라는 시대의 걸출한 천재 건축가가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가우디의 도시라고 하는 것은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오늘 하루의 여행 일정이 끝나가고 있다. 동시에 스페인 일정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석양이 물들어 가는 저녁 시간에 구엘 공원에서 여행의 감상에 젖어본다. 여행이 주는 감미로운 즐거움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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