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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서유럽

파리의 상징 에펠탑

by 훈 작가 2023. 2. 25.

앙숙(怏宿)은 ‘원한을 품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앙숙관계다.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전쟁이 보불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은 1871년 1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을 선포했다. 이 전쟁을 계기로 독일과 프랑스는 2차 대전 종전까지 앙숙 관계가 된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독일에게 패한 치욕을 만회하고 국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파리 만국박람회 때 구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세워진 탑이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센 강 서쪽 강변에 샹드 마르스 공원(Champ de Mars) 끄트머리에 세워졌다. 당시는 세계 최고 높이(300m)였다.
 
에펠 탑은 건축부터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 당시 파리 시내 건축물들이 석조 건물인데 반해 철골골조로만 된 철탑이 예술의 도시 파리와 어울리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많은 문학계 인사는 물론 예술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철거 위기 속에서 반전이 이루어진 것은 1909년이었다. 건축과 예술 측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는 이유로 철거위기를 넘기고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 탑이 보이지 않도록 집의 창문을 반대 방향으로 내었고, 점심은 에펠 탑 안의 식당에서 먹었는데 파리에서 에펠 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철과 콘크리트를 활용한 근대적 건축물이 흐름을 선도하면서 파리의 상징으로 남았다.
 
역사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한 진실이 숨어있다. 과거의 판단과 결정이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예상과 달리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1970년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할 당시 많은 반대 여론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 6대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하자 야당을 중심으로 지식인과 언론의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여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총공사비만 해도 429억7300만원으로 1967년도 국가 예산의 23.6%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당시 1인당 국민총소득은 겨우 142달러에 불과했고, 춘궁기에 아사자(餓死者)가 나올 정도로 식량이 부족했다. “쌀도 모자라는데 웬 고속도로냐.” “국가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반대여론이 줄을 이었다. 그 당시 자동차 보유 대수가 10만 대 남짓이다 보니 일부 부자들의 자가용 도로가 될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에펠탑은 자칫 흉물로 취급받아 사라질 뻔했던 철 구조물이었다. 흉물이라고 비판을 주도한 사람들은 그 당시 사회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반대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자신이 주장했던 논리를 어떻게 반론할지 자못 궁금하다.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여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 여론이 옳고 나쁨을 떠나서 미래의 상황까지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현재시점에서 추측할 뿐이다. 
 
가까이서 보는 것이 현재라면 멀리서 보는 것은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에펠 탑은 가까이서 보면 단순한 철 구조물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자 아름다운 건축조형물이다. 인간의 삶도 가까이서 보면 단순한 생존경쟁의 한 생태계이고, 멀리서 보면 예술분야의 한 장르인 연극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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