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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서유럽

미켈란젤로 언덕

by 훈 작가 2023. 3. 10.

 

도시 전체의 풍경을 보려면 전망이 좋은 곳에 오르면 된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남산에 오르면 되고, 파리풍경울 보려면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르면 된다. 물론 남산 타워나 에펠탑 전망대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경우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야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언덕은 미켈란젤로 광장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아르노(Arno) 강 서편의 언덕에 있다. 언덕 아래쪽으로는 토스카나 아펜니노산맥에서 발원한 아르노강(240km)이 서울의 한강처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Pisa)를 거쳐 리구리아 해(海)로 흘러 들어간다. 광장 중앙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복제품이다. 현재 진품은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다비드상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 청년의 모습을 미켈란젤로가 1501년과 1504년 사이에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높이는 5.17m에 이른다. 
 
‘꽃’이라는 뜻의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 박물관이라고나 할 정도로 건축물을 비롯한 유적과 예술작품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베르디, 푸치니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도시가 피렌체라고 한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아르노강 건너 왼쪽부터 베키오 다리, 베키오 궁전, 두오모 대성당, 산타 크로체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베키오 다리는 영원불멸의 고전 <신곡>을 쓴 단테가 이 다리에서 첫사랑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고, 9년 뒤 다시 이 다리에서 스치듯 마지막으로 만나서 유명한 다리다.
 
‘베키오’는 옛날 건물, 혹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 베키오 궁전은 1332년 지어진 건물이지만 지금은 시청사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궁전으로 94m 높이의 종탑이 볼만하다. 피렌체 두오모(성당)에서 5분 정도 거리의 시뇨리아 광장에 있으며 이곳은 중세 시대부터 현재까지 피렌체의 중심이다.  유럽은 그리스도교 중심의 역사, 문화, 예술, 건축이 발전했다. 그래서 유럽 어느 도시를 가든 중심에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나라마다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특징에 따라 다양한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다. 대개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건물의 양식과 예술적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는 큰 도시마다 두오모(성당)가 있지만 꽃의 성모 교회라고 불리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성당)는 특별한 데가 있다. 끝없이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뾰족 첨탑이 아니고 팔각형의 짙은 분홍색 돔 형태의 지붕에 하얀 대리석 띠를 두른 모습이 초기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랜드마크라 볼 수 있는 두오모 대성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하얀색, 분홍색, 녹색의 대리석이 기하학무늬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다. 원래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라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크다고 한다.   산타 크로체 교회는 이탈리아 고딕양식 건축물 가운데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건물이다. 내부 벽에는 토스카나 고딕, 즉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교회에는 미켈란젤로, 비토리오 알피에리, 레오나르도 브루니, 조 아키노 로시니, 갈릴레오 등 많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피렌체는 많은 예술가의 고향이다. 〈모나리자〉,〈최후의 만찬〉,〈수태고지>, 〈암굴의 성모〉 등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대표적이다. 피렌체가 낳은 두 번째 예술가는 <최후의 심판>, <다비드상>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 예술 분야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바티칸 궁전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천장 벽화로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비화가 숨겨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성인(聖人)을 모두 누드로 그렸다. 당시 성직자들은 불경스러운 그림이라고 난리를 치며 벌거벗은 모습에 옷을 입히라고 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정중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성직자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교황께서 먼저 세상을 바로 잡으시라고 전하게, 그러면 저까짓 그림 따위야 저절로 바로 잡힐 테니까.” 그는 죽기 한 달 전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성직자의 명령에 그의 제자가 스승의 원작에서 성기노출 부위만 가리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린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 오가는 인파 사이로 신랑·신부가 눈에 보인다. 눈여겨보니 현지인 아니다. 신혼여행을 온 중국인으로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캠코더로 동영상을 찍어 주는 사람도 현지인 아니다. 아마도 큰돈을 들여 서유럽으로 신혼여행을 온 모양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깃발을 따라간다. 시뇨리아 광장을 빠져나와 좁은 도로로 접어들었다. 우산을 들고 우리는 길게 행렬을 지어 서유럽 겨울 여행 나들이를 이어가고 있다. 가이드 말로는 <신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서유럽 문학의 거장 단테의 생가(生家)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박학다식한 가이드 설명에 여행이 점점 흥미롭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그런 예술작품이고 오래된 건축물이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하나씩 벗겨내는 가이드의 박식한 지식에 여행자는 새로운 안목(眼目)을 갖게 된다. 여행이 주는 보너스나 다름없다. 여행이 아니면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느끼겠는가! 
 
(이태리 피렌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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