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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그랜드캐니언

by 훈 작가 2023. 4. 15.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해야 할 말을 한순간 잇지 못했다. “우∼와”하는 탄성이 하늘로 날아간 순간 언어의 영역을 지배하는 머릿속의 뇌가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작동을 멈추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입에 맴돌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없는 순간이다. 입으로 토해내야 할 말이 그러할 진데 이 순간을 어떤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을 하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그랜드 캐니언 마더 포인트(Mather Point) 앞에 한꺼번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광경을 본 순간 보잘것없는 인간은 압도(壓倒)당할 수밖에 없다. 그 앞에 서서 다시 제정신으로 모든 감각이 제 기능을 하기까지 잠시 그저 서서 있어야만 했다. 멈추었던 심장이 어느 순간 다시 뛰었다. 심장의 박동이 달리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대 자연의 장엄함에 다가섰다. 인간이 만들어낸 표현 중에 딱 한 구절만이 이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가사의(不可思議)

내 능력으로 찾을 수 있는 표현은 이것밖에 없다. 이런저런 형용사나 명사를 찾아본 들 아무 소용없다. 모두 부질없고 하찮은 말 부스러기에 불과할 뿐이다. 잠시 어디론가 떠났던 나 자신의 영혼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었다. 이 느낌을 이 감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가슴으로 안아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외칠 때 신(神)은 어떤 영역에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신(神) 이란? 종교적인가, 아니면 천지창조 이전의 어떤 존재를 말하는가? 적어도 신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의 허구인 셈이다.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 논리나 정의가 어려울 때 우리가 찾는 존재가 신(神)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신은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추상명사다. 인류가 문자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 때 우리 마음속에 신은 그렇게 태어났다. 신은 인간의 심적 영역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신의 존재를 그렇게 믿는다. 아무리 하늘을 보고 신을 불러도 오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은 오로지 내 믿음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신론자들에게는 신이 없다. 아니 신이 죽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종교적으로 언급한다면 신의 존재는 너무나 많다. 하다못해 서낭당 작은 공간에 숨어 지내는 신도 신이니까 하는 말이다.

뜬금없이 신을 들먹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맞이하고 있는 광경을 알고 싶기에 차라리 신(神)에게라도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과학이라 불리는 학문과 지식 뿐이다. 수십억 년 전 지구가 태어나고 대륙이 융기하고 물이 흐르며 침식하며 영겁의 세월이 걸쳐져 쌓인 지층이 신생대니 고생대니 하며 지구과학이란 학문이외 무엇이 있는가. 하지만 그 조차도 허접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모든 게 설명되고 정의되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다. 인간이 생명체로써 존재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100년도 안 된다. 100년의 존재 동안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과 영겁의 세월이 누적된 시간을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그것은 자연이란 현상을 무시하는 하나의 인간들만이 스스로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수수께끼 식 문제 풀이 일뿐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지적 능력으로 만들어 낸 추론이라는 이야기다. 

이제야 느낀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다.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 신도 감히 이 자리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여기서는 이렇다 저렇다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위대함이니 장엄함이니 모두가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느꼈으면 좋겠다. 인간 스스로가 자연이 아닌 별도의 독립된 생명체로써 분리된 삶의 영역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면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낳는다. 어차피 사람이나 자연은 하나다. 자연의 현상을 규정짓고 내가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산다면 정말 우습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나 자신을 지배하는 영혼의 불꽃이 꺼지면 한 줌의 재로 흔적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이다. 인간의 삶은 극히, 일부다. 인간은 자연 속의 표시도 나지 않는 먼지일 뿐이다. 내가 자연의 품속에서 얼마나 존재감이 왜소한지 그랜드 캐니언은 깨닫게 해 주는 것 같다.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할지라도 그랜드 캐니언 앞에서 무슨 자존감을 내세우고 잘난 체할 수 있으랴!

여행은 또 다른 공간에서 삶의 가르침을 일깨워주는 스승이다. 멋있다! 아름답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찌든 삶의 아픔에서 위로받는 것도 여행이 주는 유익함이다. 힐∼링(Healing)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나름의 즐거움을 얻는 것도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이지만, 특히, 대자연과 만나는 여행의 행복은 나를 돌아보는 의미도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공존하는 모든 자연현상이 하나임을 어느 순간 넌지시 메시지를 인간을 향해 던져 주는 것 같다. 소유의 시간보다 존재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이란 공간 속의 그랜드 캐니언과 내가 함께했던 시간의 궤적에 존재하는 행복은 추억이란 명사로 살아가는 동안 오래 남을 것이다. 또 오랫동안 행복한 감정으로 남은 인생을 즐겁게 지켜 줄 것이다.

 

여행이 만들어 주는 행복은 보고 느끼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순간 어떤 존재로 시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느냐 하는 경험이다. 여행 속에 함몰되어 있던 시간이 남긴 추억 속에 그랜드 캐니언과 함께 했던 추억은 내 영혼의 행복으로 오래오래 살아 숨 쉬며 남은 삶과 동행할 것이다. 적어도 오늘 그랜드 캐니언을 만난 순간 많은 여행자는 여행이란 선택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느낄 것이다. 행복은 소유하는 시간보다 내가 어떤 존재의 시간으로 오랫동안 가치를 크게 느끼는지 그 차이를 깨닫게 해 준다. 어쩌면 여행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만 여행에 빠져들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랜드 캐니언이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나의 반려자도 같이 행복한 사람이 된다. 여행은 행복을 묶어 주는 참 아름다운 동행이다.

 

넋이 어디론가 나갔다고 돌아왔다. 아니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밖에 외출했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서 넋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나타난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한 광경에 말문이 막혔던 입을 다시 열어 말을 꺼냈다. 아! 세상에 이럴 수가 무의식 중에 스스로 말을 던지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섰다. 독백의 시간에 머물렀던 내면의 의식 세계로 들어오는 통신망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더 포인트(Mather Point)에서 환호하는 여행객들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들이 토해내는 언어들이 귓전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 순간의 행복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웃는 얼굴로 셀카봉을 높이 들고 쳐다보거나 가지고 온 휴대폰에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화면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인증 사진을 찍으며 흥분에 겨운 표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냥 사진을 담느라 감동이 주는 즐거움을 잠시 잊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몇몇 백인 여행객은 여전히 난간 쪽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향해 바라보며 석고상 모습이 풀리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들도 아마 나처럼 독백의 시간이 흘러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희희낙락 특유의 자장면 소리를 내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진 열풍을 즐기느라 안하무인 격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온통 자기들만의 세상인 듯 주변 사람을 의식하는 느낌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일어탁수(一魚濁水)의 분위기 속에 조용히 그랜드 캐니언과 마음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랜드 캐니언

콜로라도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는가.

시간 속에 묻히고

망각 속에 잊히는 인생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우주 속의 이름 없는 별이다.

시간이 잠드는 무덤 속에
생은 흔적 없이 소멸한다.

태초에 세상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미스터리다.

바람을 가르고 하늘을 열어서
이 세상을 로그인해 불러왔다.

지금에서야 위대함이 무엇인지
오늘에서야 장엄함이 무엇인지

영겁의 세월이 만든 널 보며
자만과 오만을 삭제해 버렸다.

속절없이 고개 숙여 고백하노니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 주구려.

삶이 눈물겹도록 아프게 할지라도
지금처럼 세월을 안고 살고 싶으니.

카메라를 들고 주섬주섬 곱게 앵글 속으로 추억을 채집하는 듯 그림을 담았다. 한 컷 한 컷 지금의 행복한 느낌을 담아 언젠가 다시 만나는 추억의 앨범 속에서 만날 날을 약속하며 그렇게 인증 사진이 아닌 소중한 행복을 만들 듯 그랜드 캐니언의 형상을 그대로 옮겼다. 한 번 스치는 인연으로 끝나는 행복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기에 너의 사진을 내 영혼이 담긴 애절한 마음의 노래와 함께 기행문으로 담아 사는 날까지 함께 하리라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너의 품에 안긴 내 아내의 모습을 때로는 아내와 내가 너에게 안긴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담았다. 어쩌면 그것만이 널 잊지 않는 길일지 모른다. 세상 모든 인연은 스치며 잊기 때문에, 잊지 않고 기억해서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려면 사진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마저도 없다면 밤이면 밤마다 꿈길을 헤매어 먼 하늘을 날아와야 한다. 그것은 너무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고 기약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시간의 개념을 만든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간의 굴레는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이 정한 시간의 개념 속에 굴종하지 않으면 시간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없는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다. 정해진 시간 속에 잠시 군에 가 있는 애인을 면회하는 것처럼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면회 시간이 지나가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제이 콥이 이야기한 시간은 10:00 시까지다. 시계를 보니 20분 정도가 남았다. 시간이 빠르고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가슴은 답답하게 초조해진다. 이별의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게 다가온다. 여기도 저기도 가보고, 사진도 더 담고 싶은데 마치 저승사자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쓰나미처럼 멀리서 밀려오고 있다. 아쉬움이란 단어를 입에서 꺼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쉬움이 있는 게 이별이다. 아쉬움이 밀려드는 순간 발길을 돌리는 게 여행이다. 면회 시간 마감이 임박하면 면회실은 이별의 파티를 준비해야 한다. 이별의 파티는 특별하게 준비할 것 없다. 어차피 눈물의 파티장으로 변한다. 손을 흔들며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 눈물의 파티다. 차라리 눈물을 보이지 않게 떠나자.

10:00 시가 다가오면서 투어버스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쉬움을 달래려는 여행객들이 다행히도 눈물 대신 웃음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곳을 발견했는지 마지막으로 “Grand Canyon National Park”이라 쓰인 표지석을 앞에 놓고 너나없이 사진을 찍느라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서도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달인인 자장면(중국인 관광객)들이 야단법석이다. 그 틈에서 우리 일행이 마지막 인증 사진을 찍느라 눈치를 보아가며 자장면과 밀고 당기는 기싸움을 해야 했다. 자장면이 모두 물러가고 그랜드 캐니언의 아쉬움을 이곳에서 모두 털어내려는 듯 후회 없이 사진을 찍고 투어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하여 내린 곳이 그랜드 캐니언 방문객 센터였다. 그랜드 캐니언 경비행기 선택 관광을 예약한 일행만 버스 안에 남았다. 


제이 콥이 경비행기투어를 하기로 한 일행과 함께 떠나기 전 남아 있는 일행에게 점심시간 때 만나는 장소인 멕시칸 식당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12:00 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전까지는 자유시간이며 그랜드 캐니언 방문자 센터에서 쇼핑하거나 구경하며 시간을 즐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버스를 타고 떠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 다큐멘터리 I-MAX 영화를 관람할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 보라고 한다. 아내와 나를 포함한 나머지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제이 콥이 I-MAX를 보고자 하는 우리 일행을 이끌고 상영관으로 향했다. 티켓을 끊고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상영시작이 10:30분이고, 관람 시간은 1시간 정도라고 한다. 관람이 끝나면 11:30분 정도가 될 거라며 약속 시간에 멕시칸 식당 앞에서 만나자고 하고 나서 우리 일행은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헤드폰을 받았다. 채널을 맞추면 한국어로 안내가 되니 부담이 없었다.

 I-MAX 상영관 안은 그리 넓지도 않았고, 구경하려는 관람객도 많지 않았다. 좌석에 앉고 나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압도되는 화면 속에 펼쳐지는 그랜드 캐니언의 풍경이 상상 이상이었다. 화면에서 전개되는 영상에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설명이 전혀 귓전에서만 맴돌지 무슨 말인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마치 독수리가 되어 그랜드 캐니언의 상공을 날며 보는 것처럼 화면이 실감이 나게 느껴졌다. 뿐 안 아니라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어 내가 직접 헬기를 조종하며 그랜드 캐니언을 날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 나는 장면이 이어졌고, 콜로라도강 급류 속에 래프팅 하는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현장감이 살아 있었다. 어느 면에서는 경비행기 투어보다 이를 감상하는 것이 더 가성비가 높은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 속에 관람객이 빠져드는 묘한 스릴감은 북유럽 여행 때 노르웨이 빙하박물관에서 보았던 I-MAX 영화의 장면과 비슷한 면도 있었다.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I-MAX 관람이 끝났다. 상영관을 나와 그랜드 캐니언 방문자 센터 내의 기념품 판매장에 들렀다. 이리저리 망설이다 아내와 상의 끝에 스노 글로브(Snow Globe) 하나를 사고 센터를 빠져나왔다. 11:40분이다.

하늘은 깨끗하게 청소가 된 듯 맑고 푸르다. 그러나 태양 빛은 10월의 빛이 아닌 여름의 태양 빛 같았다. 이리저리 구경을 할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 일행의 모습이 방황하듯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런 때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적당한 놀잇거리이다. 렌즈의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독수리의 감각으로 주변 거리와 풍경을 검색해 나갔다. 햇빛이 강해서 아내에게 식당 앞 그늘에서 쉬고 있으라고 말하고 사진의 표적을 포착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며 저공비행을 했다.


시선을 유혹하는 목표물이 들어왔다. 꽃이다. 꽃은 어느 나라에서 피든 매력이 있다. 매력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느끼는 게 중요하다. 설령 그 꽃이 장미꽃이라도 매력 포인트를 찾지 못하면 사람들은 꽃을 찾지 않는다. 꽃이 흔한 꽃밭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 나름의 매력이 끌리는 대로 가면 되지만 해발 2,300m의 고지대 콜로라도고원에서 꽃으로 태어나 나비를 유혹할 만한 꽃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어렴풋이 꽃으로 보이는 자태를 찾아 가까이 가보니 꽃은 꽃인데 꽃 이름을 알 수 없는 미국산 꽃이 화단에 피어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꽃을 주인공 삼아 몰래카메라를 담듯 몇 장 담았다. 찍고 나서 보니 나름 꽃으로 묘한 아름다움 속에 이끌림이 묻어난다. 마치 꽃잎 색상이 요정의 날개를 닮은 듯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휘날리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다시 아래에서 위쪽으로 렌즈 각도를 잡아 하늘을 배경으로 꽃을 찍었다. 그 모습이 더 매력적이다. 심심풀이 삼아 던진 낚싯줄에 무언가 걸렸다. 얼떨결에 잡아당겨 건져 올려보니 월척이다. 이럴 때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은 자기만족에서 출발한다. 그런 희열이 모든 취미의 출발점인지 모르겠다. 나를 미치게 하는 요인이 있어야 미친 짓도 할 수 있다. 멀리서 우리 일행이 뙤약볕에서 무슨 미친 짓인가 하며 날 쳐다보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도 미친 짓으로 보일지 모른다. 화단 근처에서 사진의 주인공을 찾는 캐스팅 작업을 다 마치고 멕시칸 식당 앞으로 갔다. 식당 안에서 특유의 이국적인 향이 주인 허락도 없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 그랜드 캐니언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고,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50곳 중에서, 1순위를 차지한 그랜드 캐니언은 4억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콜로라도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협곡으로 길이 446km, 폭의 평균 16km, 가장 깊은 곳은 1,740m에 이른다는 자연의 신비이다. 하지만 대협곡의 생성 원인에 대하여는 콜로라도강의 침식설과 해저 융기설 등 아직까지 정설이 없다. Nobody knows가 정설이라고 한다. 

1540년, 스페인의 가르시아 로페즈(Garcia Lopez)는 대원들을 이끌고, 금을 찾아 멕시코에서 북상하여, 콜로라도강에 이르러, 3일 동안 협곡을 따라 탐험하지만, 식량이 떨어져 더 이상의 진행을 포기한다. 이후 미국은 1856년, 그랜드 캐니언에 공식 탐사단을 보내고, 1869년에는 존 웨슬리 파웰(John Wesley Powell)이 탐사단을 조직하여, 70일간 콜로라도강을 따라, 그랜드 캐니언 전 구간을 탐사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26대 대통령으로 뉴딜정책을 펼친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아님)의 노력으로 일찍이 1919년에 이르러서야 "자연을 자연 그대로 관리하기" 위해 콜로라도강의 양 강변을 따라 길이 170km의 구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렇다면 장대한 그랜드 캐니언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협곡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한 요인은 다양하다. 이끼류의 뿌리에서 내뿜는 유기산에 의해 암석이 풍화되고 낮 동안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받아 암석은 팽창하고 밤에는 급격히 냉각되어 수축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암석이 쉽게 풍화돼 파괴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거대한 협곡을 만든 최대의 일꾼은 콜로라도강이다. 강줄기가 쉼 없이 흘러가면서 지표를 깎아내어 물길을 넓혀가면서 지금의 거대한 협곡을 만든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의 양쪽 절벽 지층에는 약 20억 년 정도의 지구의 유구한 시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바닥에는 약 20억 년 전에 형성된 화강암과 편마암이, 그 위로 12억∼7억 년 전에 형성된 그랜드 캐니언 퇴적암이, 그 위로 다시 지층 3분의 2를 차지하는 5억 7,000만∼2억 5,000만 년 전에 형성된 고생대 지층이 쌓여 있다. 이처럼 지구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그랜드 캐니언은 지구의 형성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지질학의 교과서와도 같은 곳으로 지형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그랜드 캐니언의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지층은 이처럼 오래됐으나 협곡 자체의 형성은 지질학적으로 볼 때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약 7,000만 년 전 태평양판과 북 아메리카판의 충돌로 미국서 부의 산맥이 형성될 당시 콜로라도고원이 약 3,000m 이상 융기했다. 이때 그랜드 캐니언 일대는 단층과 습곡과 같은 커다란 지각변동을 크게 받지 않아 수평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고원 위를 흐르는 콜로라도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지표를 서서히 깎아내어 지금의 거대한 협곡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시기가 약 1,000만 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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