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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서부 영화의 무대 "모뉴먼트 밸리"

by 훈 작가 2024. 3. 4.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가 떠오른다.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마카로니웨스턴 스타일의 미 서부 개척 시대 정통 서부극이다. 방랑의 유랑자가 부는 휘파람 소리를 배경으로 한 경쾌한 영화음악이 흐르면서 말을 탄 총잡이가 드넓은 황야를 달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상상의 날개를 펴고 먼 옛날의 추억을 불러왔다. 특유의 영화음악과 주인공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멋진 서부 사나이 이미지로 가슴속에 스타로 남아 있었다. 서부영화의 줄거리는 미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인디언과 벌이는 전쟁이거나 아니면 살인범을 쫓고 때로는 은행 강도나 열차를 탈취하는 범인들을 응징하며 총질을 해대는 권선징악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시대 서부영화 내용이야 결과를 안 봐도 비디오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며 흥행을 이끌었던 이탈리아 영화다.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등의 영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서부영화 속의 촬영 배경이었던 장소가 미 서부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다. 척박한 사막에 덩그러니 그 옛날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찬 바람이 몰아친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속 쓰린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다.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다. 반소매 티셔츠 차림에 바람막이 옷만 입고 나선 여행자의 무지가 고통을 자초한 격이 되었다. 분명 가을인데 초겨울의 추위가 느껴졌다. 콜로라도고원에 광활하게 펼쳐진 이곳은 해발 2,000m 고원의 황무지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위에 높이 130~330m의 거대한 사암 바위가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펼쳐져 있다. 현재 이곳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속해 있으며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공원으로 북미 최대 원주민 부족인 나바호 인디언들의 성지로 약 18만 명이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부슬부슬 비가 휘날린다. 매서운 바람까지 부니 아무리 안 그런 척해도 다리가 떨린다. 인디언 가이드가 왔다. 인디언 가이드와 동행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가 한 눈으로 봐도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대형 픽업 스타일 지프를 몰고 왔다. 화물칸 적재함에 철제의자를 설치한 차량으로 의자 한 줄에 사람이 4명이 3줄로 앉을 수 있도록 개조했다. 무의식 중에 인디언 가이드의 표정을 보았다. 무표정하다. 피부색은 우리와 비슷하다. 말이 없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가 지프를 운전하며 한 시간가량 모뉴먼트 밸리 이곳저곳을 굴곡진 비포장도로를 돌며 여행객들을 안내했다. 

다행히도 도중에 사나운 바람과 비가 잦아들었다. 만약 쾌청한 날씨였다면 황량한 비포장도로는 달리는 지프에서 일어나는 황톳빛 모래 먼지로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다소 춥기는 했어도 이국의 경치에 취해 여행을 즐기며 마음껏 사진을 담았다. 여행을 즐기는 관점에서는 이국적인 풍경이 흥분과 감동으로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하지만, 여행객을 안내하는 인디언 가이드에게는 그저 몇 푼 버는 자신 생업에 불과할 따름이다. 지프 투어가 끝나고 팁으로 1달러 지폐 한 장을 주며 그에게 “Thank you!” 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을 때도 그는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다.

원래 아메리카 대륙은 그들의 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총을 든 낯선 백인들이 나타났다. 인디언들은 낯선 이방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는데 선의로 친절을 베풀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백인들은 그들을 내쫓고 무자비하게 학살하며 인디언의 터전을 빼앗기 시작했다 한 때 2백만 명에 달하던 원주민들은 이제 불과 18만 명만이 이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인디언들에 대한 미국의 말살 정책은 진행 중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인권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나라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 인디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뒤에서는 철저하게 인디언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고 현재 미국의 현실이며 실제 모습이다. 모뉴먼트 밸리를 떠나며 어둡게 그을린 인디언 가이드의 얼굴이 자꾸 생각이 난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은 인생이 아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왜 그들이 그런 삶을 사는 것인가? 아니 왜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는가?

여행 전 미 서부 개척사와 관련된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니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미 대륙은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땅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정치적으로 관할구역과 문자 기록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들 원주민에게는 국가로 인정할 근거가 전혀 없는 자연인으로 존재하였으므로 냉정하게 판단하면 아메리카 대륙이 원주민의 땅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고구려가 요동성 전체를 정벌해서 영토로 삼기 전에 그곳에 원주민들이 자연인 형태로 살았으나 국가형태가 없는 지역을 점령해서 고구려성을 쌓고 지배한 역사 기록과 유물 유적이 충분하고 세계 역사학계에서도 대한민국이 고구려 후손임을 인정하므로 선조들의 직계 후손인 우리 땅이 맞지만, 미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아주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설득력이 있는 논리다.  이것이 냉정한 역사의 기록이며 현실이다. 역사는 기록이다. 역사는 종교적 신념이나 이상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역사는 오로지 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힘의 기록이다. 이기는 자가 역사를 쓰고 그것을 역사라고 정의한다. 힘이 없는 민족은 언제 어떻게 소멸할지 모르는 게 세계 역사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서부극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멋진 정의의 표상으로 가슴에 담았던 그 시절의 환상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는 단지 인디언들을 힘으로 쫓아내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백인의 우월성을 그린 영화 속의 주인공에 불과했다. 영화 속에 나왔던 모뉴먼트 밸리는 아름답다. 여행이기에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떠나는지는 모르지만 왜 인디언 가이드의 얼굴이 자꾸 머릿속에 어른거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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