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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다람쥐 쳇바퀴

by 훈 작가 2024. 2. 13.

내 눈엔 흔한 다람쥐가 아니었다. 언 듯 보면 토끼 정도만 하다. 짙은 회색에 꼬리털도 풍성했다. 조금 전 눈앞에서 사라진 곰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녀석을 만났다. 제발 도망가지 않았으면 하는 조바심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거리가 좀 멀다. 가까이 가서 찍었으면 좋겠는데 녀석이 눈치채고 도망갈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줌을 최대한 당겨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회색 다람쥐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같이 온 일행과 가이드에게 보여주었다. 가이드 왈, 회색다람쥐는 견과류나 씨앗을 좋아하고, 본능적으로 먹이가 없을 때를 대비해 여러 곳에 분산해 씨앗을 묻어 보관하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건망증이 심해 묻어둔 걸 꺼내먹는 것보다 찾지 못하는 씨앗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보통 한 마리가 1만 개를 저장하며 이 중 4천 개만 기억한다고 한다. 따라서 찾지 못해 방치된 씨앗이 나중에 나무로 성장해 숲을 울창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가이드 말이 끝나자 ‘어쩌면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지 않으려고 여기에 왔을지 모른다고 말을 꺼냈더니,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제도 오늘처럼, 내일은 오늘처럼 또 그렇게  살 것 같다. 우린 그렇게 비슷한 삶에 얽매여 비슷한 세월을 보낼지도 모른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 이야기는 틀에 박힌 일일 연속극이나 다름없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거나 다름없는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행복이란 추상명사는 항상 잡을 수 없는 무지개다. 유감스럽게도 행복이란 구체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잡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행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구체적이며, 곁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다. 벌고 싶은 돈은 늘 부족해 생활이 빠듯하다. 부족함은 스트레스로 일상에서 괴롭힌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인데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이 마음을 괴롭혀 고통을 준다.


인생은 자신이  집필하는 책이나 다름없다. 싫든 좋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삶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스스로 쓰는 자서전의 내용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일상이 매일 같이 반복된다고 생각되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쓰고 있는 책의 내용(자서전)이 허접할뿐더러 별로 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콘텐츠가 빈약한 것이다. 자신이 써 내려가는 책의 내용이 별 볼 일 없으면 당연히 삶은 재미 없을 것이다.

쳇바퀴만 돌리는 것 같은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자신의 자서전에 쓰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삶에 지치고, 일상이 지루함으로 힘들 때 여행을 통한 새로운 이야기를 자서전의 내용에 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행동에 옮겨 일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중요한 것은 쳇바퀴 같은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자신이 미 서부 여행을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미 서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만난 회색 다람쥐는 쳇바퀴만 돌리는 다람쥐는 아니다. 하지만, 녀석도 우리와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지도 모른다. 무심결에 내가 찍은 사진을 같이 보며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삶’이란 말이 나왔다. 여행은 분명 다람쥐 쳇바퀴 같은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다. 온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만난다. 여행지마다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고 색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 새로운 설렘과 흥분을 채워줄 이야기와 콘텐츠가 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라는 말이 있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이 한 말이다. 이 말을 우리 삶에 갖다 붙이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이 스토리가 빈약하고, 콘텐츠가 허접하면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을까. 정말 재미없는 자서전이 될 것이다. 이왕 쓰는 책이라면 자신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 설령 안 될지라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정을 갖고 써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쳇바퀴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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