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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면사포 폭포에 얽힌 슬픈 전설

by 훈 작가 2024. 1. 27.
이미지 출처 : 구글 pixabay

 
투어버스가 Wawona Tunnel View Point를 출발해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요세미티 지역에는 미워크(Miwok)라는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요세미티(Ysemite)는 이 부족의 언어로 '살인자'라는 뜻이기도 하고, ‘붉은 곰을 잡아라’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설(說)에 의하면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아와니다’ 인디언을 소탕하기 위해 1851년 요세미티 지역을 관할하는 제임스 세비지 소령이 이끄는 마라포사 기병대가 인디언들을 무차별로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서 보호구역으로 데리고 가던 중 젊은 군인 한 명이 “이 아름다운 골짜기 이름이 뭐냐?”라고 물었는데 그 인디언이 “요세미티!”라 대답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요세미티는 ‘아와니다’ 인디언 말로 '곰'이란 뜻인데, 당시 말이 통할 리 없었던 인디언은 기병대 병사의 질문을 ‘저기에 무엇이 있느냐?’ 아니면 ‘저 숲 속에 사냥감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알고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란다. 그러나 이보다는 원주민들이 뛰어가면서 "Yosemite! Yosemite!"라고 외치는 말을 듣고 "아! 여기가 ‘요세미티’라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이 가장 유력한 설(說)이라고 한다. 


가이드 설명이 다 끝난 것 같아 눈치도 없이 그가 하던 말을 자르면서 궁금했던 걸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Wawona Tunnel View Point에서 보여야 할 면사포 폭포가 왜 보이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물었다. 가이드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물이 없어서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가 말을 이었다. 면사포 폭포는 겨울에 쌓였던 눈이 녹아 물이 흐를 때만 폭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에 오면 물이 없어 폭포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 그랬었구나. 제주도 엉또폭포처럼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릴 때만 잠깐 폭포였다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라지는 그런 폭포.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이드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가 꺼낸 이야기는 면사포 폭포(Bridalveil Fall)에 얽힌 슬픈 전설이었다. 전설의 내용은 인디언 추장 딸과 기병대 병사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틋한 사랑 때문에 면사포 폭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1851년 마리포사 기병대와 인디언 간의 전쟁에서 시작된다. 제임스 세비지가 이끄는 마리포사 기병대는 인디언들을 정부에서 지정한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아와리치 인디언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인디언들은 선조 때부터 4,000년이나 살아온 요세미티의 땅은 신(神)이 내려 준 것이라 믿고 살아온 조상들의 유산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pixabay


드디어 기병대와 인디언 사이에 피를 부르는 전투가 요세미티 깊은 계곡에서 연일 계속되었다. 기병대 소속 스티브 일병은 어느 날 동료와 함께 깊은 계곡으로 인디언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정찰을 나갔다. 그러나 몇 시간을 헤맸으나 인디언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같이 다니던 동료는 지친 나머지 먼저 포기하고 캠프로 돌아가고, 홀로 남은 스티브 일병은 허기지고 지친 몸을 쉬기 위하여 나무 밑 잔디 위에 벌렁 누웠다. 

그가 잠시 눈을 감고 깜빡 잠이 들었다. 이상한 인기척에 눈을 떴을 때, 코앞에는 머리띠를 두른 젊은 인디언 여자가 단칼을 높이 들고 당장이라도 스티브 일병의 가슴을 내려찍으려는 자세였다. 스티브는 기습적인 공격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장 그녀의 칼이 자신을 향해 내려찍을 것 같았다. 스티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이젠 죽었다 생각하며 다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긴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자신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티브는 살며시 눈을 떠 보았다. 바로 눈 위에 검은 눈동자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꽤 오랜 시간을 시선을 마주친 채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은 스티브 일병이었다. 그는 누운 채로 팔을 뻗어 풀잎 하나를 따서 천천히 인디언 소녀에게 내밀었다. 


건네진 풀잎 하나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인디언 소녀도 겨누고 있던 칼을 거두고 풀잎을 받아 들었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마저 감돌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그들만의 사랑의 눈빛이 오갔다. 적이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스티브와 인디언 소녀는 풀밭에 나란히 앉았다. 언어 소통이 안 되어 둘은 한동안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스티브는 적극적인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이름은 스티브, 스티브.”라 반복해서 말했다. 인디언 소녀도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나 수줍은 듯이 “스티”라고 화답을 한다. 완전한 발음은 아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인디언 소녀의 깊고 검은 눈동자와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가 스티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디언 소녀도 스티브의 수려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 붉은 입술이 볼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그들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들의 만남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눈빛으로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일병이 꽃줄기를 엮어 예쁜 목걸이를 만들어 인디언 소녀의 목에 걸어주면, 인디언 소녀는 나뭇가지를 엮어 월계관을 만들어 스티브 일병의 머리에 씌워 주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pixabay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날에도 이들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어쩌다 한쪽이 못 나오게 되면 다음 날 다시 나와서 기다렸다. 이들의 은밀한 만남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마리포사 기병대와 아와리치 인디언 사이에는 치열한 전투가 매일 계속되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이 두 청춘 남․여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지 스티브 일병이 며칠째 나타나지 않았다. 

인디언 소녀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며칠을 더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스티브 일병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스티브 일병이 인근 다른 부대로 전출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 인디언 소녀는 아버지인 추장이 주재하는 회의 내용을 엿듣게 되었다. 회의 내용은 백인 기병대를 기습 공격하는 작전 내용이었다. 공격 지점과 시간을 엿듣게 된 인디언 소녀는 놀란 가슴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인디언 소녀는 스티브 일병의 신변이 걱정되었다. 소녀는 깊은 계곡 숲 속을 뚫고, 우거진 수풀을 헤집으며 험한 길을 달려 기병대 캠프로 달려갔다. “ 스티! 스티!” 인디언 소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스티브 일병을 찾았다. 스티브 대신 나타난 것은 총부리를 겨눈 낯선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녀가 외치는 “스티!”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스티브를 찾는 그녀의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pixabay


그들은 소녀를 기병대 막사 구치소에 감금시켰다. 막사에 감금되었어도 그녀는 계속 “스티! 스티!” 만을 외치며 절규했다. 그녀의 절규는 밤이 지새도록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그녀의 절규는 이어졌다. 수상하게 생각한 수비대장은 그녀를 자기 방에 데려오도록 했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스티! 스타!”를 계속 외쳤다. 수비대장이 무슨 뜻이냐고 캐물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소녀는 계속 “스티! 스티!” 만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던 차에 소녀의 시선이 우연히 벽에 걸린 지도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지도의 두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한 곳은 기병대 주둔 지역이고 다른 한 곳은 인디언 주거지였다. 그리고 지도 위에 활과 칼을 그리고, 인디언 주거지에서 기병대 주둔 지역으로 화살표를 빠르게 그려 나갔다. 그리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번갈아 움직이며, 마치 말발굽을 연상하게 하는 동작을 만들어 냈다. 

기병 대장은 이제 그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인디언의 공격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 시기가 언제인지? 인디언 소녀가 왜 이 정보를 알려 주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공격 시기가 언제인가를 재촉하는 물음에 인디언 소녀는 다시 지도 위에 초승달을 그려 놓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공격 시점이 바로 오늘 밤 자정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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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 참모들은 인디언들의 계략일 수 있다고 그녀의 행동을 믿지 말 것을 기병대장에 게 건의를 했지만, 인디언 소녀의 흩어진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기병대장은 생각이 달랐다. 그날 밤 인디언 소녀를 다시 구치소에 감금 한 채 기병대 병력을 이동하여 근처 계곡에 매복시켜 놓았다. 그날 밤 자정이 깊어 가고 하늘에 초승달이 떠오르자 갑자기 함성과 함께 말을 탄 인디언들의 무리가 나타났다. 

인디언들의 예정된 총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괴성을 질러대며 불 붙인 화살을 사정없이 쏘아대는 인디언들이 횃불을 들고 기병대 막사에 불을 질렀다. 기병대 막사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인디언 추장이 이끄는 병력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서운 불길이 바람을 타고 흩날려도 기병대 병사들은 한 명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급히 퇴각 명령을 내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기병대는 인디언들의 진로와 퇴로를 모두 차단하고 엄청난 화력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인디언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추장을 비롯한 몇몇 인디언들만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추장은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인디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전투가 끝나고 날이 밝자, 기병대장은 인디언 소녀를 감금하였던 구치소를 찾아가 보았다. 

이미지 출처 : 구글 pixabay


그러나 구치소 건물은 간밤의 전투로 인한 화재로 건물 대부분이 타버린 상태였고 인디언 소녀는 검게 타버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기병대장과 참모들은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절규하던 소녀의 모습이 기병대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경고였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소녀가 왜 적대관계에 있는 기병대에 정보를 제공했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기병대장은 엄숙한 장례만이 그녀에 대한 인간적인 마지막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이 후 사건은 곧 인근 부대로 전근 간 스티브 일병에게도 알려졌다. 스티브는 부대장에게 허락받아 먼저 근무하던 부대를 방문했다. 모든 부대원에게 인디언 소녀와의 관계를 고백하면서 인디언 소녀의 영혼과 결혼할 것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스티브 일병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대장에게 원했다. 

기병대장은 장시간 영혼 결혼의 무모함을 설명하며  스티브 일병을 설득해 보았다. 그러나 스티브 일병의 영혼 결혼에 대한의지와 집념은 확고했다. 더 이상 설득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대장은 스티브 일병의 영혼 결혼을 허락했다. 화창한 봄날, 스티브 일병은 동료들의 축복을 받으며 인디언 소녀와 항상 만나던 장소에서 인디언 소녀의 유골을 옆에 끼고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기병대장이 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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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와 축복으로 가득 차야 할 결혼식이 슬프고 숙연한 결혼식이 되고 말았다. 주례인 기병대장도 주례사를 끝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하객이자 동료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장내는 곧 울음바다가 되었다. 스티브 일병의 영혼결혼식이 동료들 의식 속에서 잊혀 갈 즈음 정찰을 나갔던 동료 하나가 캠프에 뛰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 친구들! 인디언 소녀가 환생했어.”
“….” 
 
모두가 의아했다. 동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정찰병의 행동을 살피는 눈치였다. 혹시 이 친구가 머리가 이상해진 것 아닌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결혼식장에 커다란 폭포가 생겼어.” 

동료 병사들이 반신반의하며 그 장소로 달려갔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결혼식을 올렸던 그 자리는 흔적이 없고, 그 자리에 장엄한 폭포가 생겨 엄청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산허리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그려내고 있었고 하늘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장엄한 절경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그들 중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아름다운 폭포의 이름은 면사포 폭포(Bridalveil Fall)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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