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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

by 훈 작가 2023. 8. 31.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이런 곳에 비경이 땅 아래 숨어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그곳이 어디 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인디언 가이드를 따라갔다. 아직은 설렘이나 호기심을 달래 줄 눈요기는 볼 수 없다.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조급해진다. 인터넷에서 검색할 땐 철재 계단을 통해 협곡으로 내려가는 사진을 봤는데 그런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경사진 모랫길이 협곡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짐작할 뿐이다.

협곡 초입인 모양이다. 그저 붉은색 암석뿐이다. 실감 나지 않는다. 저만치 앞서가는 인디언 가이드가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빛과 표정으로 여기저기 천천히 구경하며 그를 따라갔다. 인디언 가이드는 우리의 속마음을 모른 채 뭐가 그리 급한지 혼자 서두른다. 그런 그가 멈추더니 현지 가이드인 제이 콥(한국인)과 뭔가를 상의하더니 투 팀으로 나누었다. 


한 팀은 협곡의 아래쪽으로 우리 팀은 위쪽으로 나누어 투어를 시작했다. 위를 보니 높이는 적어도 50m 정도 되어 보였다. 협곡의 초입이라 그런지 아직은 넓은 하늘이 보인다. 협곡을 이루고 있는 붉은 암석이 햇빛을 직접 받지 않았는데도 우람하게 근육질을 자랑하며 곱게 단장을 한 듯 아름답게 보였다. 황무지 같은 벌판에,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이런 협곡이 숨어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암석에 그려진 무늬가 부드럽게 붓으로 긋고 지나간 것처럼 물결의 흔적이 남아있다. 얼마나 거센 물결이었으면 암석에 이런 흔적이 남아있을까?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부드러운 물이 급류를 형성하면 어떤 힘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견고한 암석인데 이런 암석의 표면에 물이 흐르며 자신의 흔적을 남길 정도면 그 물 흐름이 어느 정도일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상상을 초월한 비현실의 세계가 눈앞에 아주 천천히 눈앞에 펼쳐지는 중이다. 상상이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면서 흥분의 물결이 조금씩 세게 심장을 두드렸다. 골짜기 같았던 협곡이 갑자기 좁아지고, 좁은 길이 미로처럼 사암이 만든 틈새로 구불구불 이어졌다. 협곡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나 나올 법한 야릇한 분위기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형상의 암석이 빛과 어울려 비현실적인 회화 느낌을 준다.

빛이 들어와야 더 환상적일 텐데 빛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협곡 위쪽 상부는 하얗게 좁은 틈새로 회색 하늘이 숨어있을 뿐이다. 수직 협곡은 좁은 곡면을 이루며 자연 앞에 인간의 존재를 더욱더 작게 만들어 버렸다. 입체감이 살아 있는 예술은 자연이 빚은 작품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예술 공간이다. 믿기 어렵다. 자연이 만든 LIVE ART 공간이다. 그 속에 인간이 들어온 형세다. 

죽어 있던 공간이었다. 인간이 들어와 살아있는 공간이 되었다. 마치 예술 공연을 연출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협곡은 삭막하고, 미스터리하다. 긴긴 세월 은둔과 침묵으로 보낸 이곳은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이다. 은둔의 시간 속에 묻혔던 과거는 의미가 없다. 숨죽여 살았던 지하 세계에서 어느 날 우리 곁에 예술로 환생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말로는 예술이란 단어를 들먹이며 이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과 마주하면 어떤 형용사를 선택한다 해도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멋지다는 말만 갖다 붙이기 어설프고, 신비롭다는 말은 진부한 것 같고, 아름답다는 말은 지극히 단순한 표현처럼 보이고, 막연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자연의 위대함 이란 말밖에 없다. 

엔털로프 캐니언은 그랜드 캐니언의 동쪽에 있는 <Page>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협곡이다. 붉은색을 띠는 나바호 지역이 오랜 세월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자연 지형이다. 옛날에 엔텔로프(Antelope)라는 영양들이 살았던 계곡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양치기하던 목동에 의해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하는 곳인데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1987년부터라고 한다. 불과 개방된 지 약 30년밖에 안 된 명소다. 

1997년에는 홍수로 여행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고 난 뒤 반드시 가이드 투어만 허용되고 있다고 제이 콥은 설명했다. 상상컨대 지구가 태어나면서 몸부림칠 때 검은 하늘에서 내렸던 비가 물길을 만들며 콜로라도강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그 당시 애리조나 사막에 내린 엄청난 비가 갈 길을 잃고 벌판을 사납게 파고들어 땅속으로 길을 만들어 거센 급류가 되었을 것이다. 

연약한 토양은 물과 함께 급류가 되어 강으로 흘러가면서 암벽을 할퀴어 놓았을 것이고 처절한 생존을 위해 반항한 흔적을 남긴 것이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이 되었을 것이다. 강한 물의 힘과 단단한 바위가 용트림하며 싸움을 했을 것이고 그 반항의 작용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급류의 흐름에 맞서 대항하면 물은 엄청나게 사나워진다.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에 들어온 여행객들은 단순히 환희에 찬 행복을 즐길 뿐이다. 이곳이야말로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화면에 저장하면 작품이 되는 사진 천국이다. 무아지경(無我地境) 속에 셀카봉을 들고 여기저기 인증사진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여행자의 얼굴은 순진 난만한 아이가 되어 버렸다. 우리 모두의 표정은 이미 어른이 아닌 호기심 많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지 오래다. 

그랜드 케니언을 처음 만나던 순간 그 장엄함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아낌없는 감탄사를 꺼냈다. 참을 수 없는 탄성을 연발하며 황홀함에 행복했다. 진정한 감동 때문에 숨을 멎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엔텔로프 케니언은 그렇지 못했다. 그만큼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치 아름다운 미인과 속삭이며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다 보고 나니 헤어지기 싫다. 두고두고 아쉬운 시간이 다 지나갔다.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은 프로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PC 컴퓨터 윈도 7에 제공된 바탕화면 이미지 중에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의 이미지가 있을 정도이니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특히,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이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더 유명하게 만든 사진이 있다. 사진작가 피터 릭의 ' 유령'이란 작품이다. 

이 사진은 2014년에 열린 경매에서 무려 71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에 등극했다. 이 사진은 미국 애리조나 엔털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의 동굴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아름다움과 먼지가 만들어낸 유령 같은 형태를 담아낸 사진이다. 급경사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깊게 파인 협곡의 곡선들이 환상적이다. 그리고 협곡 성공에서 한 줄기 햇살이 쏟아진다. 

피터 릭의 '유령'은 협곡 사이로 쏟아진 햇살에 모래 먼지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포착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 내부에 모래 먼지가 자욱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협곡에 날리는 모래 먼지의 모습이 우연히 찍힌 것이라고 말하기에 제목과 딱 어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무리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을 기다려도 그 형상은 결코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은 나바호 인디언이 이끄는 투어로만 입장이 가능한 곳으로 애리조나 북부의 작은 도시 페이지(Page)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위치한다. 페이지(Page)에는 아름다운 인공호수인 파월(Powell)호와 콜로라도강을 막아 만든 글랜 캐니언 댐(Glen Canyon Dam), 말발굽 모양의 경이로운 경치 홀슈 밴드(Horseshoe Bend)가 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페이지(Page)로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는 건 엔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수백 년간 아메리카 인디언이 거주해 온 지역이다. 엔텔로프 캐니언은 어퍼(Upper) 캐니언과 로우(Lower) 캐니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여행객에게 관람이 허용된 곳은 로우(Lower) 캐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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