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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건너며

by 훈 작가 2023. 5. 29.

금문교(Golden Gate Bridge)에 도착한 시간은 15:20분이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춤을 춘다. 먼저 다리 사진부터 찍었다. 오늘 투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인솔자인 제이콥이 우리 일행에게 이 다리를 걷는데 자유 시간을 1시간 20분 주었다. 다리 건너편 약속 장소에서 만나야 할 시간은 16:40분이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다. 그냥 걸어서 다리만 건너면 된다. 

오른쪽으로 샌프란시스코 시내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앞쪽으로 방금 들렀던 예술의 전당 건물도 눈에 들어왔다. 하늘과 바다 사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시가지가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난다. 바다를 벗 삼아 바람을 즐기는 요트들이 하얀 종이배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드물게 그 바다를 오가는 커다란 선박이 느리게 지나간다. 유람선 투어 때 지나갔던 알카트라즈섬도 바다 한가운데에 둥둥 더 있다.

지나가던 제이콥이 우리 부부를 보고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두 분이 서 보라고 한다. 그가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다시 샌프란시스코만을 바라본다. 작품 사진에 버금가는 장면이 있을까 하며 물끄러미 바다를 훑었다. 카메라가 심심해할 것 같다. 카메라를 폼으로 가져온 게 아니다. 어쨌거나 찍을 만한 주제를 찾지 못하고 바다만 바라본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포착되었다. 해양스포츠인 카이트 서핑(Kite surfing)을 즐기는 장면이다. 이 스포츠는 패러글라이딩과 서핑의 특성을 조합하여 개발한 것으로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대형 카이트(연)를 하늘에 띄우고 이를 조종하여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서핑보드를 끌면서 물 위를 내달리는 레포츠다. 흥미로운 장면이라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다. 표준 줌 렌즈의 한계다. 그래도 셔터를 눌러본다. 

그 뒤쪽으로 요트 무리가 하얀 나비처럼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것 같다. 토요일 오후 금문교 아래 태평양 바다는 요트 경연장처럼 보인다. 그 순간 갑자기 다리 아래로 커다란 컨테이너 선박의 뱃머리가 보였다. 큰 화물선이 물살을 헤치며 항구 쪽으로 향한다. 배 선미(船尾)에서 하얀 거품을 만들어 내며 바닷물이 V자로 갈라진다.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빠르다.

시선을 맞은 편으로 돌렸다. 왼쪽 다리 위 건너편에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하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느린 걸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앞바다를 보며 다시 걸었다. 여전히 바람은 차다. 지나가는 차들이 싱싱 달리며 바람 소리를 남겨 놓고 양쪽으로 도망치듯 멀어져 간다. 그 위로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머리 위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시내 쪽으로 날아간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다리 위는 바람의 나라 같다. 

다리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보통 요트보다 덩치가 큰 요트가 보였다. 그 요트의 갑판에는 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연봉이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 경제력이어야 바다에서 요트를 즐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저 정도의 취미나 스포츠를 즐기려면 소득 수준이 상당해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 & 호주 여행 때 시드니 가이드 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민소득이 60,000달러가 넘어야 요트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요트를 즐기기엔 아직은 먼 나라의 이야기만 같다. 흔히,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요트를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 생활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언제인지 답이 안 나온다. 지금은 저 요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은근히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질투의 뒤끝이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질투에 그치면 지는 거다. 부러움을 실현해야 한다. 꿈을 위해 사는 게 인생이다. 질투를 동기부여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는 먼 꿈을 상상하는 경우가 있다. 여행이 아니면 그런 상상의 기회도 없다. 여행은 마음에 꿈꾸던 공간에 들어와 행복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그럴지라도 삶의 또 다른 행복의 동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행’이란 시간 속에 들어왔다 나오면, 단, 한 번도 ‘후회’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요트 위의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어쩌면 나처럼 아내와 같이 여행을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다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 행복은 만족에 있다. 만족은 우리의 삶 속에 여러 곳에 숨어 있다. 여행도 그 중 하나다. 

세상에는 건너야 할 다리가 많다. 어쩌면 하나 같이 행복을 찾아 건너야 할 수많은 다리를 우리는 건너왔고 또 건너야만 할지도 모른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또다시 질투와 시기의 다리를 건너야 할 것 같다. 그 다리를 힘들지 않게 건너려면 나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행복은 질투로만 얻을 수는 없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삶은 자기만족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다. 그 길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다. 그게 요트일 수도 있고,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금문교 다리일 수도 있다. 어차피 사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이고 행복도 정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오히려 불행할 수 있다. 남과 비교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은 스스로 찾고 만들기 나름이다.

●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총길이 2,789m, 주 탑 높이는 227m로 완공된 금문교는 건설 당시만 해도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여겨졌었다. 거센 바람과 안개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샌프란시스코는 다리를 짓기에 최악의 환경이다. 그러나 조지프 스트라우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설계가 완성되었고 1933년 건설을 시작하여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완공했다고 한다. 설계 당시 채색을 두고 많은 의견이 있었다. 최종단계에서 붉은 주황색으로 결정되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면서 안갯속에서도 돋보이는 색상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금문교라는 이름이 붙게 된 까닭은 이 다리가 세워진 곳이 골드 스테이트(Gold State)만(灣)이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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