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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미서부

불의 계곡

by 훈 작가 2023. 8. 18.

불의 계곡(Valley of Fire State Park)은 라스베이 거스 동북쪽 53.7마일(약 86km)에 있다. 아침식사 를 마치고 오전 07:30분에 출발했다. 15번 도로를 타고 모하비 사막의 황량한 벌판을 질주했다. 오로 지 우리 투어 버스만 외롭게 달렸다. 아직은 태양이 뜨겁지 않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어가 휴식한 시간 을 포함해 1시간 5분 걸려 도착했다. 

짙은 하늘색과 구름이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색감이다. 주변의 모든 암석은 모두 붉은색이다. 불의 계곡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 이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Atlatl Rock이다. Atlatl Rock(지도 11번)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3단으로 되어있고 15m 높이다. 경사가 있어서 오르는 게 힘들다. 다 올라가서 보니 붉은 암석 한쪽 벽에 벽화가 보였다. 

Atlatl은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창을 이라고 하는데 인디언들은 높은 바위를 향해 누가 더 높이 창을 던지는 지를 서로 겨루었다고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이곳 주변에 거주하던 고대 원주민들이 사냥과 수렵 활동을 하면서 붉은 암석 벽에 벽화를 그려 후세에 전해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인디언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 벽화도 그중 하나다. 

Atlatl Rock을 구경하고 잠시 Visitor Center에 들렀다. 내부로 들어가 당시 인디언들의 생활했던 도구와 벽화 등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주변의 붉은 바위가 마치 달의 표면처럼 구멍이 여기저기 파였다. 다시 버스를 탔다. 사방이 붉은 암석만 보이는 사막지대를 다시 달렸다. 레인보우 비스타(Rainbow Vista)를 따라 곡선 진 도로를 윈도 서핑하듯이 오르내리며 달린다. 직선도로가 아닌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없다. 

이곳이 지구인가 할 정도로 색다른 풍경이다. 잠시 내려서 구경했으면 좋겠는데 패키지 투어는 그게 안 된다. 레인보우 비스타(Rainbow Vista)는 매력적인 드라이빙 코스다. 지구가 아닌 은하계에 있는 다른 행성 같은 풍경이 아닌가 싶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다. 레인보우 비스타(Rainbow Vista) 코스 주변 풍경이 좀 더 화려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지갯빛 흡사하기 때문이다. 

불의 계곡 레인보우 비스타(Rainbow Vista) 코스는 사진 애호가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은 명소인데 사진 한 장 담지 못하고 지나고 있다. 아쉬운 순간이다. 우리는 20분 정도 달려 화이트 돔(White Domes)에 도착했다. 불의 계곡 안에 있는 바위들은 대부분 붉은색인데 유독 이곳만 하얀색 바윗덩어리가 우뚝 서 있다. 불의 계곡 (Valley of Fire)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하얀 바위가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 석회암 지질로 되어있다고 한다. 화이트 돔(White Domes)은 붉은 모래와 하얀 석회석이 섞여 다양한 색깔을 내고 있다. 화이트 돔(White Domes) 트레킹(trekking) 코스를 30분 정도 걸다 보면 딱 한 사람 정도 빠져나갈 좁은 협곡이 나온다고 하는데 불의 계곡의 홈페이지 이미지에 나올 정도로 불의 계곡의 랜드마크라고 제이콥은 말한다. 사실 여부는 조금 있으면 확인할 수 있다. 

트레킹 코스 안내도를 보니 총거리가 1.25마일(2km)이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라고 제이콥이 설명한 후, 그가 앞장서고 우리는 뒤를 따랐다. 그때가 09:50분이다. 첫걸음부터 힘들었다. 미세한 모래 때문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이 푹 들어간다. 마치 옛날 모내기 철 논에 맨발로 들어간 것처럼 중심이 자꾸 흐트러진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수밖에 없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외계인이 살 것 같은 행성에 들어온 느낌이다. 언덕을 오르니 다시 내려가는 길이다. 바위 위에 입자가 미세한 모래가 붙어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가야만 했다. 완만한 경사지만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최소한 타박상은 피할 길 없다. 태양의 열기는 아직 견딜 만하다. 햇빛을 받은 덩치 큰 바위산은 온몸이 이글거리며 불타는 듯 붉은빛이어야 불의 계곡인데 다 타버려 재가 된 것 같은 하얀 숯덩이 같다. 

최대한 무게중심을 낮추고 발걸음을 옮긴다.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오른쪽, 다시 왼쪽 중심을 이동시키며 내려갔다. 스포츠 중계방송 슬로모션 동작처럼 말이다. 왼쪽 바위를 보니 붉은색 바탕에 줄무늬가 그어져 있다. 그 무늬가 페인트 붓으로 칠한 것처럼 45도 방향으로 지나가며 흔적이 보였다. 하늘과 바위가 만나는 선위에 파란 바다가 있는 것처럼 하늘색이 짙다. 

파란 하늘에 둥둥 떠가는 흰 구름은 흘러가는 나그네 되어 나를 내려다본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 절경을 본 순간 아!,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그림이야 하며 홀로 감탄사를 토해 냈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며 한 컷을 담았다. 우리 인생도 가끔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볼 때가 있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볼 때마다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저 그림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과거가 아름다우면 추억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회다. 지난 삶이 추억이 없거나, 떠오르는 기억조차도 없다면 슬프다. 지나온 길이 아름다운 인생이면 행복한 삶이다. 어쩌면 그런 아름다운 삶을 만들려고 내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추억을 만드는 인생 드라마 같은 여정이니까. 아무리 아등바등 살아도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행복한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여행의 추억이라도 많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내려온 길을 보니 외국인 커플 여행자가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바지 차림의 남녀다.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와 진녹색 티셔츠 차림의 남자다. 다시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아내는 내가 사진을 좋아하니 알고 일찌감치 앞서갔다. 저만치 앞서가는 우리 일행이 보였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뒤처진 일행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앞선 일행이 기다린 장소에 폐허로 남아 있는 영화 촬영 세트장이 보였다. 

제이콥이 전체 인원을 파악해 본다. 23명 모두 이상 없다. 특히, 제이콥이 염려했던 서울 6 공주 할머니 팀이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와 제이콥은 한층 밝은 표정이다. 여기에서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이동하자는 제이 콥의 제안에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여행에 처음 찍는 단체 사진이다.

넓은 계곡이 차츰차츰 조금씩 좁아졌다. 좁아지는 계곡이 좁다란 골목길로 변했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좁다란 길이 길게 이어졌다. 머리 위를 쳐다봐도 하늘이 길쭉하게 드러낼 뿐이다. 태양이 사라진 좁다란 협곡은 겨우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비밀의 통로 같다. 그런 통로가 바위 사이로 20∼30m 이어졌다. 

좁은 협곡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돌자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처음 출발했던 계곡의 오른쪽 붉은 바위산의 뒤쪽인 것 같다. 태양이 조금씩 본색을 드러낸다. 10시가 지나면서 햇볕이 제법 따갑다. 한 여름철 같았으면 열기가 대단했을 것 같다. 그 정도가 아니니 다행이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아니더라도 피부로 느껴지는 감도는 달랐다. 습도가 조금만 높아도 완전 용광로 더위일 텐데….

뒤에 따라왔던 외국인 커플이 이젠 앞에 가고 있다. 연인이 아니라 부부 같다. 반바지 차림 붉게 그을린 그들의 피부색이 무척이나 건강하게 보였다. 선두를 이끄는 제이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라르고(Largo) 수준으로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은 나, 대구 싱글 여사장, 서울 모녀팀뿐이다. 하나같이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오겠는가.

앞서가던 백인 커플이 보였다. 그들은 커다란 붉은 바위 안에 동그랗게 파인 구멍 안에 올라가 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May I take a picture of you?”
“Sure”
그들이 웃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본다. 
“Thank you.”


먼발치에 제이콥의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일행을 챙기느라 기다리는 것이다. 제이 콥이 나를 보더니 사진 한 장 찍어 주겠다며 카메라를 달란다. 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 포즈를 잡았다. 카메라를 받고 뒤에 몇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대구 싱글 여사장, 서울 모녀 팀 3명이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모퉁이만 돌면 된다고 제이콥이 방향을 가리킨다. 마지막 주자가 골인한 시간은 오전 10:5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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