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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좌절을 기품으로

by 훈 작가 2026. 3. 19.

꺾일 때마다 불쑥 국어사전에서 튀어나오는 낱말 '좌절'이 미웠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았거든요. 쓴 눈물을 삼켜야 했죠. 앞이 캄캄해 쓸쓸한 밤 우울한 거리를 혼자 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무너져 세상이 싫어 삶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과거 속에 '좌절'은 긴 고통의 터널이었습니다.

 

인정합니다. '좌절'이 남긴 아픔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는 걸. 현재의 내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도. 감사하죠. 그때는 몰랐죠. '좌절'을 더 나은 삶을 위한 백신 예방주사로 받아들였다면 영혼에 잠깐 스치는 감기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소나무들은 정상적이었죠.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가는 게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허리 굽은 할머니처럼 옆으로 눕는 자세로 기어가듯 자랐죠. 창피스러운 나머지 야반도주하듯 친구들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 홀로 외로이 지금껏 살았습니다. 어쨌든 이것저것 눈치 볼 필요 없어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하늘도 원망할 이유도 없어지더군요,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이젠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게다기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비웃음 살 필요도 없어 좋습니다. 어쩌다 내가 이런 DNA를 갖고 태어났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질곡의 세월을 오로지 삶에만 몰두했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혹독한 추위와 거친 눈보라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이제 지금의 내 모습이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지난 세월 속에 모든 '좌절'과 시련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으니까요.

 

살이 있음은 좌절 속에 피는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누군가 내 모습을 보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좌절'을 딛고 견디어 낸 지금의 내 모습에 감사합니다. 불평한들 내 정체성이 바뀌는 건 아니까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오히려 이 모습이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품(氣稟)이요 멋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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