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잔인해.”
당신에게 이런 표현을 할 줄 정말 몰랐습니다. T.S.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죠. 하지만 당신이 그럴 줄 정말 몰랐습니다. 모두 기다렸고 당신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죠. 당신에 대한 마음,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럼에도‘잔인하다.’라는 형용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서운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이 사랑받는 이유, 무얼까요. 4월은 T.S. 엘리엇의 시처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밀어 올리고 혹독한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서 생명이 고개를 들게 하는 당신의 숭고한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겨울을 견뎌내고 당신이 오길 기다리며 희망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삽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태생적으로 차별을 싫어합니다. 아니,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해하기 어렵겠죠.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 이유는 당신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당신에게 어떤 감정도 없음을 사전에 밝혀 둡니다. 행여 오해하면 나 역시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먹는 것을 차별할 때 말의 품격을 무시하고 가볍게 농담하듯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 차별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흔히 나오는 말입니다. 왜? 같은 벚나무인데 어떤 나무는 꽃이 흐드러지게 폈는데 어떤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잎이 나오는지, 당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까지 만해도 안 그랬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잔인하다는 형용사를 꺼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마음으로 생각하면 알아듣고도 남을 겁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벚나무가 당신에게 얼마나 서운해할까. 갑자기 왜 당신이 변했을까.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벚나무를 오늘도 만나고 왔습니다. 안쓰러워 볼 수 없었습니다. 봄꽃은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져야 잎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벚나무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이제나저제나 꽃이 피겠지, 하고 기다렸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니면 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품격으로 보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의심하면 안 되는데 혹시 못된 인간의 품성을 배워 차별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이 아픕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벚나무 마음을 헤아려 보면 알 겁니다.
당신이 깜빡하고 실수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에 꽃을 피우지 못한 녀석들에게 부디 내년에는 ‘안 그럴게.’ 하고 약속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갈수록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제발 예전 당신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부탁합니다.
'Photo 에세이 > 감성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목련 (6) | 2026.05.12 |
|---|---|
| 목련 꽃의 비애 (21) | 2026.04.17 |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4) | 2026.04.07 |
| 구부러진 소나무 (18) | 2026.03.30 |
| 무뎌진 감성으로 봄을 맞다 (10) | 2026.03.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