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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자목련

by 훈 작가 2026. 5. 12.

쌀쌀한 3월이 떠나자 도심의 뒷골목도 무거운 외투를 벗었다. 어깨를 움츠렸던 행인들도 허리를 펴고 걷는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하늘이 달라져서다. 겨우 내내 뒤덮은 잿빛이 사라진 봄이었지만 다소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던 건 사실이다. 일상의 활기를 불어넣은 봄, 얼굴은 보이지 않는데 춘사월의 빛과 숨결이 거리마다 가득하다.

 

봄이 노랗게, 하얗게, 때론 붉게 피고 있다. 시인의 언어처럼 온갖 꽃들이 대문을 열고 나와 손짓한다. 그럼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 많다. 늘 바쁜 일상에 쫓기는 삶을 그려나가는 서민들의 모습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봄의 손길을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그들의 얼굴엔 어딘지 모르게 그늘져 있다.

그렇게 오가는 거리를 지나 산책길을 걸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주인공, 바로 자목련이다. 도심의 거리에 흔치 않은 자목련이 활짝 핀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하긴 나도 할 말이 없다. 퇴직하기 전까지 나도 그랬으니까. 생각보다 삶의 공간에서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탓일 게다..

 

오복치과 건물 앞에 서 있는 자목련 한 그루. 난 유혹적인 자태에 시선을 빼앗겼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미소를 숨기고 나는 다가갔다. 혹여 옛날에 내가 그랬던 기억을 떠올리며 은근히 미안했다. 사실 오래전 치아를 치료할 때 드나들었던 곳인데 그때 몰랐던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에서야 내 눈에 띈 건 너무 반가웠다.

돌이켜 보니 예전에 내게 꽃에 관심이 있었던가? 으음. 아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기 전까지는 전혀 그런 적 없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예나 지금이나 나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진을 취미로 하길 잘했다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무관심 속에 꽃들이 피었는지 졌는지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하니까.

 

자목련과의 만남은 우연한 행운이다. 연인과의 데이트처럼 짜릿하고 감미롭지는 않다. 하지만 봄의 감성을 느끼게 해 주고 렌즈 속으로 빨려드는 자목련의 매력을 즐기는 것만 해도 내겐 행복이다. 이게 단순한 만남이지만 힐링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작은 우연 속에 따뜻한 감성을 주니까 결코 작은 것도 아니다.

자목련과의 데이트는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즐겼다. 그것도 독차지하다시피 혼자서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소 닭쳐다 보듯 했다. 사람들 가슴이 메말라 그런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세상이 삭막해진 탓일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꽃을 보고도 꽃에 대한 감정이 너무 무덤덤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꽃눈이 날려야만 환호하고 탄성을 지르는 게 봄이 아니다. 그럼에도 유독 벚꽃만 피기 시작하면 전국이 축제로 들썩인다. 사실 꽃의 품격이나 아름다움으로 치면 벚꽃은 목련과 비교가 안 되는데. 급이 워낙 다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아니었으면 자목련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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