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와 전학 오던 첫날이 기억이 생생하다. 교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반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데 너무 긴장되어 얼굴이 빨개졌다. 모두 나만 쳐다본다. 내 가슴은 참새 심장처럼 콩닥콩닥 뛰었다. 어떡해야 진정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떨렸다.
성격 탓도 있지만 촌스러워 보이는것 같아 그랬는지 모른다. 교실 안 아이들 모두 상고머리인데 나만 까까머리였다. 하교할 때 보니 나만 가방이 아닌 책보자기였고 검정 고무신이었다. 수줍음을 넘어 창피해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 티를 벗어나 학교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그런 마음이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실 수줍음은 정상적인 인간의 특성이다. 낯선 상황에 어색한 건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수줍음 타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타인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분위기를 살피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애쓰는 행동이다. 단지 내겐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의 문제였다.
‘수줍음’을 꺼낸 이유는 꽃말 때문이다. 검색해 보니 살구꽃의 꽃말이 ‘아가씨의 수줍음’이다 왜 꽃말에 ‘수줍음’이 들어갈까? 처음엔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느낌이 왔다. 내가 전학 오던 날 반 아이들 앞에서 빨개진 내 얼굴처럼 살구꽃이 그런 색이다. 다만, 내가 아가씨가 아닐 뿐이다.
꽃을 가까이서 예쁘게 찍어 보려고 한껏 렌즈를 당겨보았다. 순간 꽃말처럼 살구꽃의 수줍음이 보였다. 시골 처녀 같은 수줍음이다. 명동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미모의 도심 아가씨처럼 화려한 색조 화장기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수수함과 순수함이 꽃의 전부다. 도시 아가씨들에 비해 뭇 남성들의 시선을 유혹할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뜻이다.
세련되게 꾸민 멋스러움에 훔쳐 보게 되는 도시 아가씨의 수줍음이 아니다. 그냥 갓 상경한 시골 처녀의 은은한 수줍음이다. 달리 보면 늦가을 첫눈 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시골 소녀의 미소가 엿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전혀 화려함이 묻어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다. 수줍음은 꽃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난 이런 여자의 수줍음이 좋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