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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담장

by 훈 작가 2026. 3. 29.

돌담 너머 소담스러운 분위기가 봄의 서정을 자극한다. 따사로운 봄볕이 요란스럽게 산수유 요정들과 수다 떠는 듯하다. 가던 걸음을 붙잡는다. 내 시선은 먼 하늘로 날아간다. 과거 속에 잠든 추억 한 장을 꺼내 펼쳐 보았다. 아련히 떠오르는 초가집 뒤뜰이 보인다. 살며시 눈 감고 빈 잔에 추억을 따라 마셔 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빈 시골집을 지키는 강아지만 꼬리를 흔들며 어린 나를 반겼다. 모두 밭에 나가 농사일을 준비하느라 봄이 왔어도 봄다운 낭만과 여유를 모르고 살던 시절이었다. 어쩔 수 없이 또래 아이들과 마을 공터에서 비석 치기를 하며 한가로운 봄날을 보내곤 했었다. 봄이 왔어도 봄의 따뜻한 정겨움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Daum

담장 안의 봄은 늘 그렇게 조용한 봄날이었다. 앙증스럽게 몽글몽글 꽃망울 터뜨린 산수유 꽃을 반길 틈도 없이 어른들은 집을 비우고 들녘에 나가고, 동네 아이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고향의 봄은 늘 그렇게 반복되었고, 담장 안에 찾아온 봄은 저네들끼리 환호성 치듯 봄의 합창곡을 부르며 나른한 봄날의 오후를 보냈다.

 

기와 담장을 처음 본 건 도시로 이사 나와서였다. 대부분 벽돌 담장이었는데 시골보다 높았다. 무엇이 무서워서일까. 대부분 담장 위로 기와지붕만 빼꼼히 보였다. 그런데 시골 촌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담장이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담장 위에 깨진 유리 조각을 심어 놓았거나 심지어 철조망을 친 담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담장을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 도둑이 많이 살고 있나, 아니면 훔쳐 갈 게 많으니까 넘보지 말라는 뜻인가, 아무튼 흔한 말로 삭막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아이들끼리 골목에서 놀다 보면 시끄럽다고 어른들이 나와 야단쳤다. 거기에 아쉬운 건 따로 있었다. 담장 너머로 봄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간혹 고풍스러운 기와집은 시골 고향 집처럼 담장이 낮았다. 봄소식을 알리는 산수유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담장은 시골보다 인심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흔하지 않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살 것 같은 기와집도 있었다. 담장을 쌓고 사는 이유는 알지만, 이웃과 이웃 사이에 왜 그리 높이 쌓고 사는지 의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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