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써 졸음을 쫓으려 해도 누군가 몰래 점심 반찬에 나온 콩나물국에 수면제를 탔는지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무기력한 눈동자는 컴퓨터 화면에 초점조차 제대로 못 맞춥니다. 뇌신경에서 내린 지시를 아무런 이유 없이 '배 째라고 해' 하듯 몸이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왜 이렇게 졸리는 지 잠에 천하장사가 없다더니 이를 두고 말하는 모양입니다.
나른해지는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봅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입니다. 식곤증인지 춘곤증인지 알 수 없지만 하품이 자꾸만 나옵니다. 하는 일도 없는데 피곤하고 시도 때도 없이 졸립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글 좀 써 보려고 하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꾸만 내려옵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낮잠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은 뉴턴입니다. 사과나무 아래서 낮잠 자다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낮잠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낮잠이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벗어나거나 피로 해소를 위한 시간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선 시선은 곱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직장 생활 당시 근무시간에 낮잠을 자다 걸리면 상사의 눈 밖에 나는 건 게 뻔하죠. 인사고과 불이익은 근무 태도 불량으로 낙인찍히는 날에는 인사철에 한직으로 날아갈 수도 있거든요. 이유야 어쨌든 낮잠은 우리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행 때 가이드한테 들은 바로는 중국과 베트남의 낮잠 문화는 이미 알려져 있고, 스페인의 시에스타(Siesta)는 한낮에 더위를 피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생겨난 전통문화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다만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는 여러 관광지의 맛집, 카페, 상점 등은 영업 때문에 예외적으로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저녁형 인간(올빼미족)’이 절반을 넘는 데다 수면의 질이 안 좋은 걸로 알려져 있죠. OECD 국가 중 평균 잠에 드는 시각은 0시 51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늦다고 합니다. 특히 10대와 20대가 85%, 82%로 수면의 질이 심각하게 안 좋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컴퓨터 게임, 입시 공부 등으로 늦은 시간까지 잠을 청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상식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동떨어진 생활을 합니다. 굳이 언급할 필요 없을 정도로 다 알고 있죠. 우리는 워낙 바쁘게 사니까요. 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죠. 사는 게 힘드니까. 출근길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면 ‘꾸벅’ ‘꾸벅’ 잠이 부족해 피곤한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죠.
일요일 오후, 공원길을 벤치에서 꿀잠에 빠진 고양이 한 쌍과 마주쳤습니다. 순간 ‘팔자 좋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일주일 내내 근무하느라 힘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속으로 ‘야, 어젯밤 뭐 했냐?’ 묻고 싶었습니다. 낮잠을 쫓아내려 산책 나왔다가 녀석들이 낮잠 자고 있는 걸 보고 잠시 부럽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 금요일 대전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희생자가 실종됐고 실종자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일찍 식사를 마친 후 공장 휴게실에서 잠깐 쪽잠을 자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그런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삼가 고인이 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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