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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플리트비체

by 훈 작가 2023. 5. 7.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3박 4일은 잡아야 한다. 여행 시즌에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서 인증 사진을 찍는 것도 민폐가 될 정도라고 한다. 연간 100만 명 정도의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우리는 그중에서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를 둘러볼 예정이다.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라고 인솔자가 말했다. 공원 관리사무소 출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 관리직원이 한 사람씩 검표를 했고 우리는 인솔자 뒤를 따랐다. 봄바람 같은 겨울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다. 수신기를 오른쪽 귀에만 꽂고 왼쪽 것은 빼 버렸다. 답답해서였다. 앞쪽 먼발치 계곡 아래쪽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와!”하는 탄성이 합창 소리처럼 앞쪽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인솔자 음성이 수신기를 타고 귀에 들려왔다. 잠시 서서 인솔자의 말에 귀를 세워 그의 말을 들었다. 

똑같은 장소인데 불구하고 여름철에 바로 이 장소에 서 있으면 사람 소리만 들리자 물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귀가 열리고 동공이 확대되면서 계곡 건너편을 보았다. 눈앞에 협곡이 드러나면서 건너편에 하얀 명주 실타래처럼 몇 갈래의 하얀 물줄기를 이루며 폭포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폭포는 다시 한번 몇 갈래의 폭포를 만들며 다시 아래로 흐른다. 협곡을 이루는 반대편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협곡과 협곡 사이인 아래쪽은 그 폭포수와 기존의 흐르는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아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셀카봉과 휴대전화기를 들고 인증 사진을 담는 즐거움에 빠져 즐거움을 만끽한다. 행복한 표정 속에는 이런 달콤함이 있다. 그 달콤함은 웃음이다. 폭포의 절경을 구경하는데 이곳만 한 명당자리가 없다. 다행히도 우리 일행만 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지간히 사진을 찍었나 보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나도 건너편의 주인공을 사진에 담았다. 아내의 인증 사진도 빼놓지 않았다. 일행이 다 빠져나갔다. 난 그 자리에서 <플리트비체>의 첫 만남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높은 언덕에서 물이 흐르는 협곡 아래쪽으로 천천히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듯이 비스듬하게 경사진 “갈”지(之) 자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정말 물이 끝내 준다. 빛이 아름다운 것인지, 색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물이 주인공이다. <플리트비체>의 주인공은 단연 물이다. 같은 물인데 어찌 이리 곱고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이 아름답다고 하면 그런 표현 자체가 맞는 말인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플리트비체>의 물은 정말 아름답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물이 이렇게 고혹적이고 황홀한 느낌을 주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은 이곳을 가리켜 <요정(妖精)이 사는 곳>이라고도 했다. 흔히,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이 찾는 요정(料亭)으로 생각하면 정말 난센스다. 그런 요정(料亭)에 가면 아름다운 요정(妖精) 대신에 농염한 얼굴에 타고난 구미호(九尾狐) 기질이 있는 황진이 같은 기생(妓生)이 나올 것이다. <요정(妖精)이 사는 곳>에 왔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 <팅커벨>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요정의 나라 문 앞에 서 있다. <요정(妖精)의 나라>로 들어가 볼까? 

<요정(妖精)의 나라>에 들어왔다. 겨울이라 이곳을 찾은 사람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유명한 명소는 사람들로 북적일 텐데 참 조용하다. 인솔자의 말대로 성수기에 이곳에 오면 사람들 말소리 때문에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계절 탓인지 제대로 <요정(妖精)의 나라> 분위기를 보고, 느끼고 돌아갈 것 같다. 넓은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통행로가 흐르는 물 위쪽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인위적인 오염을 차단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친환경적인 통행로다. 옛날 기찻길을 만들 때 쓰였던 침목용 크기의 목재를 엮어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왼쪽으로 흐르는 물이 서로 모여 옥색의 빛을 만들고 있는 잔잔한 물빛을 들여다보았다. 우스갯소리로 “속 보인다.” 또는 “속이 다 보인다.”라는 말처럼 정말 있는 그대로 속을 다 보여준다. 

때로 사람들은 위선으로 포장한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진실로 다가서기도 하고 거짓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또 상황에 따라서는 마음에 꽃과 향기를 담은 언어가 아닌 칼을 품은 언어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은 마음속에서 나와 입(口)을 통해 말(言)로 만들어진다. 그 소리가 아름다운 노래일 수도 있고, 사랑을 담은 밀어(蜜語) 일 수 있고, 진심 어린 향기를 담은 배려의 언어일 수도 있고, 희망을 북돋아 주는 용기의 언어일 수도 있고, 힘을 실어주는 격려와 칭찬의 언어일 수도 있고, 감언이설로 상대방의 영혼을 흐리게 만드는 꽃뱀 같은 언어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기성 꼬드김의 언어와 감정이 섞인 욕설일 수도 있고, 심지어 살인을 불러오는 무서운 흉기일 수 있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한 길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방법은 간단한 것 같다. 남의 마음만 알려고 하면 절대로 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다. 내 마음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그만큼 보여준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 마음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남의 마음만 보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은 자신의 언어와 상대방이 만드는 언어로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플리트비체>의 물이 만드는 소리는 곧 물의 언어이자 노래다. <플리트비체>에는 있는 그대로다. 우리는 단지 눈으로만 보고 감탄사만 토해내며 스치고 지나가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사람도 그보다 <플리트비체>가 가진 진정한 자연의 소리와 언어를 통해 듣고 교감하듯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

물의 요정들이 몸단장하고 있다. 그들이 모여 “백조의 호수” 같은 발레공연을 준비하고 하얀 발레리나의 옷을 갈아입고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무대 위로 흐른다. 카네기 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백조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앉듯 발레리나가 등장한다. 선율에 맞추어 춤이 시작되고 무대 뒤에 대기했던 발레리나가 줄지어 무대 위로 쏟아져 나온다. 한 편의 예술 공연 같은 무대의 막이 올랐다. 요정(妖精)들이 무리를 지어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했다. 옥색의 요정이 손을 잡고 몸을 날리면서 베토벤의 “합창” 제4악장 <환희의 송가>을 부른다. 

물은 침묵의 언어만 갖는다. 침묵을 깨뜨리고 흐르면서 만드는 음악이 <플리트비체>의 계곡을 카네기 홀로 만드는 것 같다. 폭포수를 만드는 소리는 대자연이 노래하는 서시(序詩)에 붙이는 교향곡 같다. 어떤 악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이다. 감미롭고 달콤하고 초콜릿 같은 로맨티시즘의 음악이 아니다. 심금(心琴)을 울리고 사랑에 빠지게 하는 극적인 음악도 아니다. 자연이 품고 있는 교향곡은 단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주는 울림이 자연의 교향곡이다. 

자연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최후의 안식처다. 진정한 힐링(Healing)의 요소를 갖춘 어머니 품속 같은 휴식처다. 여전히 귓전에 울려 퍼지는 물의 향연이 만든 자연의 음악은 아름답게 들린다. 물의 요정들이 만들어내는 합창과 화음은 지겹지 않다. 오른쪽에 통행로 옆에 있는 폭포에서 울리는 폭포 소리가 눈과 귀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순백의 옷을 입고 발레리나로 변신한 요정들이 하늘에서 마치 하얀 나비처럼 날아 땅으로 내려오는 이 폭포가 <사스타브츠 폭포>다. 

이 폭포를 기점으로 강이 만들어진다. 코라나 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코라나 강은 143km를 흘러 쿠바 강에 합류된다. 다리 위로 보이는 호수는 <카를로바치>라는 호수다. 절벽 아래쪽에 바짝 붙은 목재로 된 산책로를 걸어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언덕 위에서 보았던 폭포가 앞쪽을 가로막고 서있다. <플리트비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폭포 앞까지 왔다. 입장권에 인쇄된 사진과 같은 장소다. 바로 <플리트비체>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78m 높이를 자랑하는 <벨리키슬랍 폭포>다. 여러 물줄기를 하얗게 만들며 줄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폭포 앞에 이르니 제법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마다 웃음 가득 머금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하-하-하-하-하-하 

발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따라 요정의 환희와 동행한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왼쪽을 다시 보았다. 조금 지나쳤던 <사스타브츠 폭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하얀 면사포를 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은 춤을 추는 요정들의 모습이다. 통행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협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협곡을 지그재그로 내려왔던 길이 나온다. 외국인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왼쪽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추고 <풀리트비체>의 절경에 넋이 나간 듯  협곡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녀가 서 있었던 통행로 위에 있는 호수가 <카를로바치> 호수다. 

여기저기 작은 폭포들과 호수들도 많이 보였다. 호숫물이 맑아 호수 속의 잉어들이 유유자적하며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가바노비치> 호수를 계속 따라가면 <밀카 트르니나> 폭포가 보였다. 폭포 옆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로아티아의 소프라노 <밀카 트르니나(1863~1941)>의 기념비가 있다. 1879년 자그레브에서 그녀가 공연할 당시 그 수익금을 국립공원보호 협회에 기부해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계속 더 올라가면 몇 개의 호수를 지나 폭포 위로 난 다리를 건너가면 <코츠악> 호수가 나타난다. <폴리트 비체> 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다. 깊이 18m 호수로 햇빛의 변화에 따라 호수의 색이 아름답게 변한다고 하는데 여행 일정상 그곳까지는 가지 못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갔다. 

언덕에 오르니 시야에서 사라지는 요정을 닮은 맑은 물빛이 하늘색으로 다시 변했다. 물과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색이 닮았다. 하늘과 물이 만든 색이 요정의 얼굴인 것 같다. 물은 색이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투명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물이 색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색이 없는 물을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하다. 물론 화가는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리기 때문에 물이 무슨 색인지 그다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화가의 관점과 예술가의 관점에서 색으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하얀 겨울을 만나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플리트비체>에서 눈을 만나지는 못한 것은 아마도 물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이곳을 찾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대신 물이 만든 자연의 세계를 보았고, 그들이 만든 자연의 교향곡을 감상했고, 그들이 연출한 발레의 공연 같은 자연의 예술을 보았다. 그 속에 물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났다. 물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빛과 색을 담는다. 사람이 물을 닮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카르스트 지형 위에 형성된 호수 물빛이 고혹(蠱惑)적인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크고 작은 호수와 폭포, 야생동식물, 계절마다 다른 색깔의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봄과 가을에는 비취색, 여름에는 터키석 색깔, 겨울에는 암녹색으로 만들며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여행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Mala Kapela산의 단층 지역과 Licka Pljesivica의 돌출 부분 사이에 자리 잡은 16개의 호수에서 떨어지는 멋진 폭포의 절경은 입구 초입에서부터 관람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남북방향으로 8km가 넘게 펼쳐진 16개의 호수는 635m 고도에서 503m로 낮아지는 산들에서 흘러나오는 상·하의 호수 군으로 나뉘어(상부 호수 12개, 하부호수 4개) Korana 강으로 흘러든다. 물속의 광물이나 미생물의 양, 그리고 빛의 각도에 따라 호수는 담청색에서 녹색, 회색, 청색까지 다양한 색깔로 변하며 관람객의 여심(旅心)을 사로잡는 곳이다. 이곳 국립공원 산책코스는 다양하다. 시간 여유에 따라 3시간에서 7시간 코스까지 다양하게 있다. <퍼온 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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