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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두브로브니크 골목길

by 훈 작가 2023. 4. 1.

 

골목길 접어들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좋아하는 애창곡 '골목길'의 첫 소절이다. 예전에 동료들과 한잔하고 하고 노래방에 가면 꼭 불렀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느린 리듬에 맞추어 목청을 한 번 가다듬고 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종로 3가에서 32번 버스(월계동 ↔ 후암동)를 타면, 종점인 후암동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내린다. 하숙집을 가려면 긴 터널 같은 어두운 골목길을 9~10분 걸어야 했다.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닌 탓에 골목길에 들어서면 취기에 젖었던 정신도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은근히 밀려드는 긴장감이 심장을 압박한다.

담장을 경계로 굴곡진 골목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 뒤에서 잡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나마 전봇대 위에 가로등이나 방범등이라도 있으면 좀 덜 했을 텐데…. 그러다 저만치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은근히 경계심을 갖게 된다. 그 사람과 지나칠 때까지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골목길은 이웃과 이웃 사이를 갈라놓은 비무장지대 같은 공간이다. 사생활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다. 담장 높이도 시골처럼 낮지도 않다. 게다가 담장 위에 철조망이나 유리 조각까지 있으니 완벽한 경계 태세를 갖춘 셈이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벽 같다. 우리는 그렇게 이웃과 담장을 쌓고 지낸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정감 어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이 없다. 우선 골목이 운치 있어 보였다. 좁은 골목길에 카페가 있다. 한잔의 커피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고, 서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창문마다 즐비한 앙증스러운 꽃 화분이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만들어 준다. 서로 마음을 열면 골목길도 이렇게 운치 있고 멋지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이런 골목길이 없는 걸까.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골목길에 몰래 갖다 버리는 몰염치한 불법 쓰레기 투기부터 없어져야 한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도 양심 불량인 이웃이 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이웃 간의 정도 쌓고 서로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골목길을 만들려면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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