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동화마을 '체스키크룸로프'

by 훈 작가 2023. 8. 2.

체스키크룸로프 성(Cesky Krumlov Castle)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작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고 그 시냇물에 놓인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지나서 뒤쪽으로 아치형 다리가 보였다. 망토 다리 (Cloak Bridge)이다. 망토 다리(Cloak Bridge)는 체스키크룸로프 2개의 성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로 3층으로 된 아치형 모양의 다리를 석조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 다리는 체스키크룸로프 성(Cesky Krumlov Castle)의 상부 성과 하부 성을 연결하는 아치형 모양의 다리로 성의 서쪽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모양이 어깨에 걸친 망토 모양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5세기에 축조되었으며, 당시에는 목조 다리였다고 하나 지금은 석조기둥 위에 3층의 아치형 모양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다리 아랫부분에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통로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이 처음에는 해자(垓字)였다고 한다. 


망토 다리(Cloak Bridge)가 있는 성벽 아래 아치문을 통해 성(城) 안 마을로 들어갔다. 붉은색 지붕이 눈에 띄었다. 그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하얀색 건물들이 보이면서 성안의 마을을 휘감고 돌며 흐르는 블타바강(Vltava River)과 그 강 위에 놓여있는 나무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에서 왼쪽을 보니 성(城)의 상징 같은 탑이 우뚝 솟아 위엄을 자랑하듯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높이 54.5m의 <흐라데크 타워>다. 다리에서 성과 <흐라데크 타워>를 보며 사진을 한 장 찍고 마을 안쪽으로 걸었다.

앙증스러운 분위기의 기념품 판매장과 중세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파스텔 색조로 화장을 한 것처럼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다. 고풍스럽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도로 바닥은 중세 시대에 깔아놓은 돌들이 그 상태 그대로 깔려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고 갔는지 돌 표면이 반들반들했다. 이런 풍경이 마치 동화 속의 마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왔다. 이 거리를 찾는 여행객들은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뛰어넘어 과거로 돌아가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시간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느낌을 즐기는 것도 잠시였다. 건물 외벽에 표시된 Hotel, Pension, Cafe 영문 표시 간판 글씨와 기념품 가게 밖에 진열된 상품 때문이다. 

그리 넓지 않은 공터가 나왔다. <스보노스티 광장(Svornosti Square)>이다. <스보노스티 광장>의 외관은 13세기에 조성되었다. 다양한 색상의 파스텔 색조를 띤 르네상스풍의 건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의 유일한 광장이다. 초기에 주거 건물들은 목재로 지어졌으나 14세기와 15세기에 접어들면서 석조 건물로 바뀌었다. 현재의 시청사 건물은 2개의 오래된 고딕 건물로 연결되어 16세기 중엽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시청사 건물의 정면 외벽에 4개의 상징 문양으로 조각되었는데, 그것은 체스키크룸로프 시와 체코 왕국 그리고 당시 성의 영주였던 에겐 베르크와 로젠베르크(Rogenberg) 2개 가문을 의미한다고 한다. 광장의 오른편 끝에는 '성 삼위일체 탑'이 건립되어 있는데, 탑의 맨 위에는 이발사 다리에 서 있는 성인(聖人)상과 같은 모양의 상이 새겨져 있다. 그 이유는 이 탑의 건립이 페스트를 완전히 퇴치한 기념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크양식인 이 탑의 정식명칭은 <바로크 플라크 원주(Baroque Plague Column)>다. '플라크'가 흑사병을 의미하는데 흑사병 창궐이 멈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715년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탑 위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아래에는 흑사병 퇴치에 앞장을 선 수호자들 (바츨라프, 비뜨, 요한, 유다 다 데오, 성 프란치스, 세바스챤, 게타노, 로흐 )이 조각되어 있다. 

성안의 마을로 들어올 때는 사람들이 별로 안 보였다. 광장에 들어오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였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이곳에서 열었는지 노점상들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위한 꼬마전구가 나무에 설치되어 있는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매년 6월 축제 시즌이 되면 주민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 옷을 입고 이 광장에서 공연하며, 18세기 당시 귀족들 모습으로 분장을 한 가면무도회와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광장을 지나 골목길을 다시 올라갔다. <체스키크룸로프 지역박물관>이 나왔다. 박물관 앞 넓은 마당에 이르니 전망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확 트인 시야 속에 들어오는 체스키크룸로프성의 탑과 마을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셀카봉과 휴대전화를 들고 이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황홀한 풍경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직은 그 누구도 눈앞에 펼쳐질 마을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예고편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그 풍경이 반가웠고 흥분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박물관 앞뜰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벤치에서 기타를 치는 노인 한 분이 보였다. 잠시 그가 연주하는 곡을 들었다. 클래식한 선율이 프로 수준 같았다. 공짜로 듣기에 아까운 선율이다. 1유로(EURO) 동전을 하나 꺼내 기타 케이스에 놓고 그곳을 나왔다. 카페 골목의 벽에 걸려 있는 광고물이 예술작품처럼 시선을 끈다. 그냥 지나치려다 카메라에 몇 장 담았다. 그것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것은 골목길 사이로 멀리 보이는 높이 54.5m의 <흐라데크 타워>였다. 그 첨탑을 보면서 골목길을 내려갔다. <이발사 다리(Lazebnicky most)>가 나왔다. 

<이발사의 다리>부터 시작되는 거리가 <라트란(Latran) 거리>라고 부른다. <라트란(Latran)>이란 말은 “도둑”이라는 뜻인데 어느 수도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도둑 중 한 명이 회개한대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중세 시대의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 거리는 예전 영주들을 모시던 하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라트란(Latran) 거리>는 이발사의 다리에서 시작되어 구도심지의 북쪽 <부데요비츠카(Budejovicka Gate)>문까지의 길을 말하는데 이 거리는 1555년 <체스키크룸로프성(城)>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중세 거리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바로크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라트란(Latran) 거리>가 지금은 카페, 레스토랑, 피자가게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기념품들을 파는 매장들로 건물의 1층을 대부분 차지하고 2층 이상은 주택용으로 쓰이는 상가형 주거 건물로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 시즌 성수기가 아닌 것 같다. 거리가 한산해 보였고 가게들도 문을 오픈하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우리는 쓸쓸하다 못해 적막감이 드는 체스키크룸로프 구시가지 길을 걷고 있다. 

<라트란(Latran) 거리>의 끝 지점인 <부데요비츠카(Budejovicka Gate)>문 쪽으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었다. 왼쪽으로 서서히 경사진 오르막길로 오르다 보니 조금씩 숨이 차면서 약간의 땀이 나는 듯 온몸에 열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성(城)이 높은 곳에 있으니 약간의 육체적인 고통은 감수해야 했다. 잠시 뒤면 <체스키크룸로프성(城)> 안에서 성 밖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숲 속에서는 숲을 볼 수 없다. 지금까지는 숲 속에 본 <체스키크룸로프>의 모습을 본 것에 불과하다. 멋진 숲의 전망을 조망하려면 역시 높은 곳에 올라야 한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에서 본 빨간 마을 풍경처럼 말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 동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텐부르크  (85) 2023.12.11
프라하 야경  (16) 2023.11.21
부다페스트 야경  (2) 2023.07.20
플리트비체  (0) 2023.05.07
두브로브니크 골목길  (0) 2023.04.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