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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로텐부르크

by 훈 작가 2023. 12. 11.

08:40분 <로텐부르크>에 도착했다. 투어버스가 주차장에 멈추고 내리자마자 성곽이 보였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사이로 오솔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성안에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 마을에 들어온 듯했다. 조용한 성안의 마을은 인기척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사는 건지 안 사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하다. 

중세 양식의 집들뿐이었다. 도로 바닥도 <프라하>의 구도심지 도로처럼 온통 돌로 깔려있다. 그저 인솔자가 앞장서고 우리 일행은 뒤를 따라 중세마을 같은 거리를 걸어갈 뿐이다. 침묵을 지키던 인솔자가 설명을 시작한 곳은 성곽 안의 마을 중심으로 보이는 조그만 광장이었다. <마르크트> 광장이다. 그가 우리에게 수신기를 꽂으라고 말했다. 설명은 길지 않았다.


<로텐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다. 독일 바이에른주 북부의 소도시로 인구가 8,000명 정도에 불과한 <로텐부르크>는 약 4㎞ 둘레의 성곽 안에 중세마을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의 40% 정도가 파괴됐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 재건했다고 한다. 성안은 주민 2,500여 명의 생활 터전이기도 한 <로텐부르크> 구도심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매년 이곳은 숙박 인원 50만 명을 포함해 약 1,000만 명의 여행객이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로텐부르크> 경제의 관광 비중은 20%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구도심의 건물 대부분은 “기념물 보호법” 대상으로 지정돼 함부로 철거하거나 고칠 수 없고, 푸줏간 건물과 일부 유명 전통가옥은 시(市)가 소유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라고 한다. 개인 소유의 건물이라도 기념물 보호 대상일 경우 손을 대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보호 대상 건물도 당국이 장려하는 방식을 따라 리모델링 등을 하면 그 비용을 시가 지원해 준다. 건물 간판은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형광등 간판 대신 상점별 특성을 살린 전통적인 간판을 달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전통적인 것만 고수하진 않는다. 많은 음식점과 상점들이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주민을 위한 것이기도 한 까닭이다.


<마르크트> 광장에서 <로텐부르크>의 개요에 대해 인솔자가 설명한 후 추가로 <로텐부르크>에 얽힌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중세 시대 종교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 사이에 갈등으로 벌어진 ‘30년 전쟁’(1618~1648)에서 독일의 인구 1/3이 죽고 전 국토가 황폐해졌다. 1631년 <로텐부르크>를 점령한 에스파냐(스페인)의 '틸리'라는 구교도 측 장교는 이곳을 불태우고 신교도들을 처형할 것을 명령했다. 그 당시 <로텐부르크>의 '느슈'시장은 연회를 베풀며 처형을 철회할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데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구교도 '틸리' 장군은 <로텐부르크> 시장 '느슈' 시장에게 전격적으로 제안을 했다. 당신(느슈 시장)이 3.25ℓ의 와인을 단숨에 마시면 시민들을 처형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이에 '느슈' 시장은 신교도들을 구하기 위해 와인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것을 지켜본 '틸리' 장군은 부하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행히도 신교도들은 처형을 면할 수 있었다.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느슈' 시장은 술에 취해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 후 <로텐부르크>에서는 매년 6월이면 '마이스터 트룽크(위대한 들이킴)'라는 축제가 펼쳐져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한다고 한다. 


시청사 왼쪽에 있는 건물의 인형 시계인 <마이스터트룽크>는 양쪽의 창문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시간 정각에 창문이 열리고 인형극이 펼쳐지는데, 시계 양쪽 창이 열리면서 그 당시의 장군 인형과 시장 인형이 나타나 와인 잔을 손에 든 시장이 와인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시간에 맞춰 많은 관광객이 <마르크트> 광장으로 모여든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프라하 구시가지에 있는 천문시계와 비슷한 퍼포먼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상 퍼포먼스를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르크트> 광장 뒤쪽으로 성 야곱 교회가 있다. 1,300년부터 190년에 걸쳐 완성된 <로텐부르크>의 상징적 교회라고 한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라고 한다. 내부에는 리멘슈나이더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 있다고 한다. 특히 성스러운 피의 제단, 프란찌스쿠스 제단 등 15세기의 여러 제단과 5,500개의 파이프로 만든 오르간이 유명하다고 한다.


<마르크트> 광장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 박물관(Puppen und Spiezeug Museum)>이 있다고 한다. 이곳이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라고 하는데 구경할 시간도 없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아 입장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입장료가 6 EURO라고 하니 부담스럽다. 이곳과 더불어 꼭 구경해야 할 곳이 <범죄박물관>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단 하나뿐인 범죄박물관으로 <로텐부르크>에서 과거 700년에 걸친 유럽의 법과 형벌의 역사를 소개하는 곳으로 단두대와 목 자르는 칼, 사기범에게 씌웠다고 하는 징계 마스크 등 3,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말로만 듣던 중세 시대 정조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조대라는 말에 여자들은 쓴웃음 지었고 남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띠었다. 나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청사 앞 광장에서 주변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범죄박물관>을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혐오스러울 것 같다며 아내가 가지 말자고 한다. 아내와 <성 야곱 교회>를 가 보기로 했는데 여기도 입장료가 1.5 EURO나 된다. 그냥 외관만 보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그곳을 보고 나오다가 길모퉁이에 있는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가게 문을 열고 영업하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눈에 뿅 갈 것 같은 인형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훔쳐 가는 것 같았다. 인형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색상도 보고 디자인도 요모조모 살펴봐도 어디 하나 미운 곳이 없다. 치밀하고 정교한 인형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내에게 독일은 여기가 마지막이니 하나 사자고 이야기했더니 아내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같은 기념품이고 같은 인형이라도 독일제품은 많이 달라 보였다. 일본에 가면 눈을 사로잡는 기념품이 많듯이 독일도 비슷한 것 같다. 나름대로 가장 멋지게 보이는 목각인형과 키 홀더를 사고 나왔다. 


<마르크트>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로텐부르크>의 중세마을 거리를 배경으로 몇 장의 인증 사진을 찍었다. 광장 주변에는 흩어진 우리 일행들이 한가로이 추억을 만드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건너편 거리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가 보았다. 들어가 보니 여기도 인형들로 넘쳐난다. 가게 안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이른 시간 때문인 듯하다. 아내와 난 그 사람들 틈에 끼어 마지막 날 여행을 즐겼다. 쇼핑은 사는 것도 즐겁지만 Window shopping도 즐겁다.


인솔자 음성이 수신기를 타고 들려왔다.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리는 목소리다. 긴 행렬을 이루며 다시 돌아간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로텐부르크>는 관광 명소다운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느낌이다. 그 모습이 영화 촬영장의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영화를 촬영할 때만큼은 활기가 넘치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찬 바람만 분다. <로텐부르크> 성안의 마을은 모든 분위기가 중세 시대와 똑같은 풍경이다. 그런 거리에 오가는 사람의 모습이 안 보였다. 


거리에 주차된 승용차만 없으면 완벽한 세트장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곳에 올 때 지나왔던 <마르쿠스 탑>과 <백색 탑>을 다시 지나갔다. <마르쿠스 탑>과 <뢰더아치>, <마르크트 광장>의 동쪽으로 난 길(뢰더가세) 중간쯤에 위치하는 <마르쿠스 탑>과 <뢰더 아치>는 <백색 탑>과 함께 도시가 정착된 12세기에 건립되었다. 마르쿠스 탑 옆에는 지금은 <로텐부르크> 문서실이 된 옛날 감옥 <뷜리텔하우스>가 있다. 


<로텐부르크> 마을이 인상적이다. 서울의 북촌과 인사동 그리고 전주 한옥 마을처럼 상업화되어 버린 거리로 물들어 고유의 멋을 잃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단순히 둘러보는 박제된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공간을 유지하려는 것 같다. 그 점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다만, 우리가 방문한 시기와 시점이 관광 시즌이 아니기에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체스키크롬로프>는 그런대로 다소 여행객의 발길이 보였었는데 이곳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세트장은 모든 사람이 떠나는 것처럼 우리는 썰렁한 거리를 빠져나갔다. 투어를 마치면서 느낀 게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건물인데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했는지 놀랄 따름이다. 누군가가 이곳을 보존하고 지켜 내려고 고집스럽게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국보 1호인 남대문에 떠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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