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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부다페스트 야경

by 훈 작가 2023. 7. 20.

여행 오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궁금했다. 이왕 온 여행이니 확인해 보아야 할 듯싶다. 글을 올린 이들이 하나같이 환상적이라 하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자꾸 밤이 기다려진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유혹이란 얼굴로 나를 설레게 하고, 나는 그런 호기심을 억누르기 쉽지 않았다. 구경하지 않으면 후회만 남을 것 같은 마음에 주저 없이 선택 관광에 한 표를 던진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 투어버스 안은 달콤한 유혹의 향기가 가득 차 있다. 도나우강의 유람선 야경 투어는 이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자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어차피 밤은 유혹이 춤추는 시간이니 낭만의 감성을 충전하고 분위기를 즐겨보자. 시가지를 스치는 설렘의 시간은 점점 심장을 뜨겁게 타오르게 만든다. 이를 부추기는 현지 가이드의 현란한 말솜씨는 여행객을 한층 더 들뜨게 만들었다.

그는 체코 프라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유럽 3대 야경이라고 하며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유럽의 3대 야경을 누가 언제 선정했고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모르지만, 현지 가이드 말에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그런 이유로 혹시 뻥이 너무 센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현지 가이드가 나의 의구심을 눈치챘는지  만루 홈런 같은 말을 던져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날려버렸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신이 허락한 자에게만 보여줍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런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어 현지 가이드가 부다페스트에서 제일 큰 3층짜리 유람선의 여행자를 위해 통 채로 빌렸다고 한다. 말솜씨가 어눌하기라도 하면 믿음이 갈 텐데, 언변이 물 흐르듯  너무 유창하다 보니 허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일단 유람선에 승선했다. 타고 보니 완전 허풍은 아니었다. 3층 유람선도 맞고, 유람선에 오른 여행객도 우리 일행 이외 단 한 사람도 없다. 정말 통째로 빌렸나 보다. 괜한 의심을 했나 보다. 

유람선 꽁지에서 짙은 발동기 기름 냄새와 연소되어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어둠에 묻혀 강바람에 흩어졌다. 유람선이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강바람이 얼굴에 스쳤다. 겨울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동유럽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한강유람선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겨울인데 겨울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야경 쇼 무대의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은 단연 국회의사당 건물이다. 국회의사당 건물이라고 설명해 주니 그렇지, 모르고 보면 오래된 아름다운 궁전으로 여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정하기는 그렇지만 아마 이 건물이 부다페스트 야경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야경은 도나우강에 걸쳐 있는 부다페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세체니 다리’다. 낮에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분위기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야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겔레르트 언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도 조명을 받아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다페스트 밤은 유혹의 빛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 빛이 여행자의 시선을 흔든다. 그 빛에 빠져들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황홀한 야경이 춤춘다. 밤은 단지 야경을 위한 무대가 되어 주는 시간에 불과하다. 누군가 달콤한 말을 하면 한순간에 낭만을 불태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이 때문에 연인들이 밤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밤의 변신은 유혹의 빛이다. 어둠은 추한 것들을 감싸준다. 대신 화려한 조명은 작은 아름다움도 돋보이게 만든다. 여자들이 화장하는 순간 다른 얼굴로 변하는 것처럼 밤의 빛은 사람의 눈을 흔들리게 만든다. 그래서 야한 여자가 밤에는 더 매력 있게 보일 수도 있다. 속으로는 야한 여자가 더 섹시하고, 더 좋으면서 안 그런 척 표정을 짓는 것이 남성들의 속물근성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부다페스트 야경은 여행자의 눈길을 유혹하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유혹이라는 단어가 왜 있는지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유혹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단어다. 결코 야하다는 말이 천박한 표현이 아님을 부다페스트 야경이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은 왠지 야한 밤이 될지도 모르겠다. 꿈속에서라도 야한 꿈을 꾸었으면 좋으련만…. 로맨틱한 유혹에 젖고 싶은 부다페스트의 밤이 깊어져 간다. 

이럴 땐 분위기 있는 음악이 감미롭게 들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 분위기에 딱 맞는 음악이라면 브람스가 작곡한 헝가리 안 무곡 5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달콤한 와인을 곁들인 디너파티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로맨틱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감미로운 밤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어디까지나 상상은 자유이니까.

원래 헝가리 안 무곡 5번은 빠르고 경쾌하면서도 흥겨운 음악이다. 반면에 슬프고 애잔한 색조를 띠고 있다. 이 곡은 헝가리 집시들의 유랑생활과 애환이 담겨 있다. 유랑은 자유로운 삶이다. 어쩌면 평생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헝가리 안 무곡 5번은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면 낭만과 환희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이별해야 하는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어떤 이별이든 아쉬움을 남긴다. 부다페스트 야경과 헝가리 안 무곡 5번과 딱 맞아떨어지는 한 편의 운명 교향곡과 같은 음악이다. 여행이나 유랑이나 떠도는 것은 같다. 여행은 잠시 유랑(流浪)을 떠나는 것이지만 유랑은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이다. 도나우강물에 젖은 부다페스트의 밤이 깊어 간다. 오늘 밤만이라도 집시가 되어 헝가리 안 무곡 5번을 들으며 부다페스트 밤 빠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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