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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유럽

프라하 야경

by 훈 작가 2023. 11. 21.
프라하 성

프라하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곳이 <카를교>다. <카를교>는 체코어로는 <카를루프 모스트(Karlův most)>인데, 이 다리는 1357년 카를 4세의 지시로 건설을 시작하여 15세기 초에 완공되었다. 1172년에 완공된 유디트 다리(old Judith Bridge)가 1342년에 발생한 큰 홍수로 심각하게 파괴되어 처음에는 그저 돌다리(Kamenný most) 혹은, 프라하 다리(Pražký most)라고 불렀는데, 1870년부터 <카를교>로 부르게 되었다. 

카를교 광장


블타바강의 <카를교>는 1841년까지 프라하성과 구시가지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길이 621m, 폭 10m로 게겐스브루크(Regensburg)에 있는 돌다리처럼 16개의 아치로 이루어졌다. 다리의 양쪽 난간에는 모두 15개의 동상 혹은 석상이 서 있다. 대부분 바로크양식으로 된 동상들은 1683년부터 171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당 시대에 존경받던 성인 혹은 수호성인들이다. 

카를교 입구


마티아스 브라운(Matthias Braun), 얀 브로코프(Jan Brokoff), 미카엘 요세프(Michael Joseph), 페르디난드 막시밀리안(Ferdinand Maxmilian) 등 그 시대에 뛰어난 보헤미아의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특히, 성 십자가와 갈보리(the Holy Crucifix and Calvary), 성 루드가르드(St. Luthgard), 얀 네포무츠키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가이드는 이 다리에 있는 석상들은 모두 모조품이라고 했다. 1965년 모든 조각상을 복제품으로 교체하고 본래 진품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카를교에서 본 프라하 성


블타바강 건너 언덕 위에 프라하성이 어둠 속에 조명을 받으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듯 서 있다. 프라하 야경의 상징이다. 부다페스트 야경과 마찬가지로 프라하 야경도 유럽의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명소라고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비교 심리가 작용했는지 부다페스트 야경을 떠올려 본다. 물론 야경을 보는 방식은 달랐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도나우강 유람선 상에서 야경 투어 하며 구경했지만, 프라하의 야경은 <카를교> 다리 위를 오가며 두 발로 걷는 도보였다. 

카를교


같은 야경이지만 다르다. 도나우강 유람선 상에서 탄성으로 맞이했던 야경과는 우리 일행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무덤덤한 얼굴이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겉으로는 그랬었다. 객관적으로 순위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떠오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만남에 대한 첫인상 때문인 것 같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임팩트(Impact)가 강했다. 그것은 본능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강렬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계탑 광장과 틴 교회


시각적으로 그만큼 강렬하지 못한 첫 만남에 프라하의 야경은 가슴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프라하의 야경이 부다페스트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는 섣부르다. 아직 그 매력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프라하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부다페스트보다 어둡다. 야경의 포인트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빛의 화려함이다. 그 주인공이 강렬한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받아야 주제가 돋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난  안목(眼目)이 부족한 탓에 그만 프라하의 밤을 평가절하 해버렸다.

프라하 트램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 바닥은 벽돌 크기의 돌들이 가지런하게 깔려있다. <카를교>를 밝혀주는 가로등이 듬성듬성 있어 어두웠다. 다리 난간에 늘어서 있는 석상들도 초라하게 보였다. 그것이 석상인지 성인상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푸대접을 받는 옛 노인들의 조각상 같다. 어차피 내일 낮에 다시 올 것이라 하니 차라리 지나쳐 버렸다. 어둠 속을 내려앉은 강변의 건물들도 조명을 받아 야경 무대의 조연배우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블타바 강


흔들리는 불빛이 강물에 반영되며 춤을 춘다. 흐르는 강물이 춤을 추며 불빛의 리듬이 되어준다. 조용한 밤에 흐르는 세레나데처럼 음악이 여행자의 가슴에 들려오듯 은은하다. 야경의 화려함만을 생각하면 프라하의 야경은 매력이 없다. 강렬한 유혹의 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야경은 유혹의 빛이 아니다. 가만히 다가와 속삭이는 빛이다. 젊음과 환호가 넘치는 클럽(Club) 풍경처럼 음악과 열기를 토해내는 것 같은 야경이 아니다. 다정한 연인끼리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에 분위기가 어울리는 야경이다. 

카를교의 연인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속에 프라하 야경의 의미를 퍼즐에 맞추듯 문제 풀이를 하고 있을 때 얼굴이 뜨거워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연인이 달콤한 키스를 하고 있다. 그 순간 익숙하지 않은 야동의 모습을 본 것처럼 얼굴을 돌렸다. 아! 프라하의 야경이 만드는 프라하의 연인이 따로 없었다. 드라마의 제목 <프라하의 연인>처럼 프라하의 야경은 사랑을 만드는 조용한 속삭임이 있는 밤인 것 같다. 

카를교와 프라하 성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다페스트 야경보다 너무 어두웠다. 모름지기 어둠은 무엇인가를 숨기는 분위기를 만든다. 남모르게 은밀한 사랑의 언어를 나누기에는 좋은 밤일지 모르지만, 낯선 여행자에게는 이런 분위기는 낯설고 은근히 무섭기도 하다. 차라리 밤하늘에 별빛이라도 반짝이는 분위기였으면 정말 프라하의 밤은 더 멋져 보였을 텐데 하늘마저 음산한 구름이 덮고 있었다. 

멀리서 본 카를교


다리 난간 양편으로 늘어서 있는 조각상들도 공포영화의 분위기처럼 등덜미를 싸늘하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가는 사람들이 그런 범죄영화 같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거기에 이따금 2인 1조의 하얀색 제복의 경찰관들이 이곳 치안을 위해 다리 위를 주기적으로 순찰 활동을 하고 있어 우범지대 같은 분위기는 벗었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어둑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를교 그림


다리 끝까지 걸어갔다 돌아왔다. 좋아하는 사진은 찍고 찍어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야경 사진 때문에 프라하 야경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실망이란 표현도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해가 질 무렵에 이곳에 왔다면 사진은 상황이 크게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몰 전후 매직 아워(magic hour)가 훨씬 지난 시간이어서 멋진 그림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처럼 모든 게 내 마음에 들면 여행이 아니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투어를 마친 시간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카를교> 첨탑을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카메라에 의지하며 셔터를 연신 눌렀다. 시간이 무료하게 흐른다. 인솔자가 있는 곳으로 오니 주변에 우리 일행이 거의 다 와 있었다. <카를교> 첨탑이 있는 곳이다. 더 이상 자유 시간을 준다 해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서서히 걸음을 옮겨 <카를교> 첨탑 광장을 벗어났다. 그 시각이 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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