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라떼별곡

황혼 블루스(1)

by 훈 작가 2023. 5. 19.

일몰은 신비한 아름다운 빛의 극치입니다. 하루의 삶을 부둥켜안고 기우는 낙조(落照)는 황홀한 감동을 남깁니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오늘도 일몰이 남긴 노을빛이 가슴에 긴 여운을 새겨 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를 잔잔하게 느끼게 해 주는 시간입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인생에 고맙다고 말해 봅니다.

노을빛이 물러가면서 어둠은 일상이 남긴 모든 빛을 삼켜버립니다. 일몰의 잔해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정적이 물듭니다. 이어 하나, 둘 작은 별들이 깨어나 일어납니다. 빚의 죽음은 별로 환생하는 시간이 됩니다. 땅에서 자취를 감춘 빛이 온 밤하늘에 별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우리는 그 별들을 흠모하며 꿈의 나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해지는 풍경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보고 싶지만, 여유가 없는 속세의 삶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황혼인생에 이르게 됩니다. 순간 아! 정말 세월이 유수 같다는 걸 실감합니다. 뜬금없지만 왜?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삶을 황혼이라는 낱말에 비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여정 황혼역에 이르러도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라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지는 꽃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억지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스스로 지나온 인생 여정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황혼을 황홀하게 맞이해야 할 겁니다.

일몰이 황혼으로 비유되는 표현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지난 날의 삶이 과연 아름다웠나,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만든 적은 없었나. 신세를 진 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는 제대로 했나.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스칩니다. 그때 좀 베풀고 살걸,  좀 참을걸,  조금 더 잘할 걸 하는 생각이 들면 후회라는 말이 불쑥 떠오릅니다.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황혼(黃昏)처럼 마무리해야 합니다. ‘후회’라는 단어가 문장 속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 대신 ‘인생아, 고마웠다. 잘 살았다. 그래, 수고했다.’라는 말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의 나와 달콤한 와인 한잔 나누며 밤하늘의 별이 되는 순간까지 웃으며 노래해야 합니다. 그게 황혼 블루스입니다. 

'Photo 에세이 > 라떼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수를 지키자  (0) 2023.05.24
꽃은 유혹의 상징이 아닙니다.  (2) 2023.05.20
스토커(?)  (0) 2023.05.16
보리밭(1)  (2) 2023.05.06
어린이 날  (2) 2023.05.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