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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보리밭(1)

by 훈 작가 2023. 5. 6.

초록이 짙어 가는 5월입니다. 봄의 숲은 형형색색의 연초록에서 시작하여 점점 짙게 물들어 갑니다. 그러다 5월이면 계절의 여왕으로 등극하기에 이르지요. 들녘의 봄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이 나오고 밭에는 보리가 자라납니다. 봄 풍경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초록입니다. 

5월은 봄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절정의 시기입니다. 색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모든 색을 통틀어 가장 온화한 색으로 초록을 꼽습니다. 그들은 초록이 고요함과 평화로움의 색이자 안전함·성장·생명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색의 꽃들이 활짝 핀 풍경 속에 초록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겁니다.

홀연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 봄입니다. 이맘때면 들녘에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보리밭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신 비닐하우스만 보입니다. 그만큼 옛날의 봄의 정취를 만나기 힘듭니다. 농민들에게 보리는 돈이 안 되는 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채소나 원예작물을 기르죠. 

심지어 쌀도 남아돈다고 합니다. 한때는 보릿고개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 납니다. 1970년대에 혼·분식을 장려하기도 했었죠. 쌀소비가 감소하다 보니 쌀 소비 촉진 캠페인도 펼치고는 있지만 효과가 기대치에 못 미쳐 미미한 모양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쌀도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정치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한바탕 시끄러웠죠. 개정안 골자는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하거나 생산량이 수요를 3% 이상 초과하면 정부 수매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입니다. 결국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농촌에서 벼농사 풍경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요즘 세대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모르긴 해도 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지 않겠는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보리밭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느끼는 일종의 소회(所懷)입니다. 사실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시는 풍요로워졌고 농촌은 어딘지 모르게 소외되어가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농촌이었으면 많은 사람이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보리밭 풍경을 보니 동요 <고향의 봄>을 부르던 그 농촌이 아닙니다. 점점 사라져 가는 농촌 풍경이 정감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진 속의 보리밭 풍경은 힐~링의 느낌을 주는 초록빛인데 실제는 적막하고 삭막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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