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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호주&뉴질랜드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

by 훈 작가 2023. 6. 3.

블루마운틴은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120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해발 1,000m에 이른다. 페더데일 동물원을 출발해 정오를 지나 고풍스러운 한 호텔 건물에 도착했다. 3층 목조건물이다. 저 멀리 건너편에 블루마운틴 계곡이 희미하게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조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고풍스럽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보존이 잘 된 느낌이 들었다. 헤리티지 호텔이라는곳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호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곳 호텔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정통 스테이크로 점심을 먹었다. 특별한 점심 메뉴라는데 난 정통 스테이크가 뭔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고기는 부드러워 먹을 만했다. 

블루마운틴 시닉 월드(Blue Mountains Scenic Word)에 도착했다. 매표소 앞에 여행객들이 표를 타기 위해 길게 선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계곡 사이를 잇는 케이블카도 보였다. 케이블카가 웬만한 대형버스 크다. 1대로 왕복하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스카이라인라 불리는 케이블카를 타는 시간은 고작 5분 정도다. 

두 번을 왕복하고 나서야 우리 차례가 왔다. 운 좋게 맨 앞줄이어서 전망 좋은 왼쪽으로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케이불카가 출발했다. 블루마운틴은 호주판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한다. 황량하게 보이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과는 다르다. 울창한 숲으로 우거지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계곡 사이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정글을 이룬다.

나뭇잎에서 나오는 기름 성분이 햇빛에  반사되어 계곡 전체가 푸른빛을 띤다고 해서 블루마운틴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왼쪽으로 세 자매봉이 떡시루 모양의 사암 절벽에 양초 3개를 올려놓은 것 같다. 투명한 바닥을 통해 보이는 숲이 마치 녹색 양탄자를 타고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 든다. 정글 위를 지나온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계단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와 시닉 레일 웨이 승차장에 왔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승차 홈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레일 길이는 544m로 경사 각도는 52도에 이른다. 궤도열차의 중간 좌석에 가족이 나란히 앉았다. 안전요원이 미소 띤 얼굴로 내 카메라를 받아 사진을 찍어줬다. 

안전요원이 승차 확인한 다음 문이 닫혔다. 열차가 움직였다. 그러던 열차가 갑자기 앞쪽으로 기울어졌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탑승객 모두가 일제히 “카~악” 소리를 질렀다. 일순간 짧은 전율이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했다. 여행객이 소리치는 고성이 궤도열차 안으로 퍼져나갔다. 청룡 열차 타는 듯한 고성은 잠시뿐이었다. 

나에게는 적당한 쾌감이었다. 엉덩이에 전달되는 진동이 멈추고 문이 열렸다. 호주의 청정공기가 에어컨 바람처럼 상쾌하게 불어왔다. 블루마운틴이 제공하는 자연의 청량감이다. 유칼립투스 숲 사이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우거진 숲이 열대우림 정글처럼 느껴진다. 짙은 초록의 향기가 허파를 씻어준다. 

숲 속 데크 길을 걷는다. 혼자 걸으면 사색하기 좋은 장소다. 어쩌면 힐-링의 산책코스 같다. 숲은 나를 잠시 잊게 해 준다. 동시에 자연의 고마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인생은 먼 길을 걷는 여정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하다. 나 홀로 걷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해야 행복하다. 

인생은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연은 가족이다. 여행에 있어 가족과 함께 만드는 추억은 진정한 행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이 여행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여행은 행복이란 보물찾기 같은 게임이다. 보물은 보석이 아니라 빛나는 행복이다. 여행은 시간의 가치가 지닌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귓전을 의심케 했다. 이곳이 오래전 탄광 지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국립공원에 2000년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경이롭다. 순간 강원도 탄광 지대가 생각났다. 우리는 폐광촌이 된 상태다. 시사(示唆)하는 바가 무엇인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조금 전 타고 내려온 궤도열차도 1880년대 이곳 탄광에서 석탄을 캐서 운반하고 광부들이 타고 다니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당시 사용했던 도구들도 보존되어 전시하고 있다. 갱도에서 사용했던 수레와 말 형상도 재현해 놓았다. 채굴이 중단된 이유는 다른 곳에서 노천 탄광이 발견되어 굳이 채굴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큰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어 벼락 치는 소리가 하늘을 찢는다. 울창한 숲 속에 공포감이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툭툭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 시점이 다행히도 케이블카 승차장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잠시 뒤 사납게 빗방울이 숲 속을 파고들었다. 찬 바람이 살결에 와닿으며 소름이 돋았다. 

기온이 떨어지고 한여름인데 추위가 느껴졌다. 케이블카는 운행을 멈추었다. 사나운 빗소리가 유칼립투스 나뭇잎에 난타 공연을 하듯 때려댄다. 자연이 연주하는 공연 같다. 어떤 악기도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음악이다. 이따금 하늘에서 연주곡에 맞추어 정글을 뒤흔드는 천둥소리를 낸다. 오페라하우스를 이곳에 옮겨 놓은 듯 제법 긴 교향곡이 블루마운틴 협곡에 한동안 메아리쳤다.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수그러든다. 짙은 회색 구름 조각이 흩어지면서 초록의 정글 계곡이 점점 환해졌다. 이어 하늘도 하얀 우윳빛으로 바뀌었다. 비가 그치자 다시 케이블카 운행이 재개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 위에 있는 터미널까지 이동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세 자매봉 투어뿐이다. 그것을 향해 에코 포인트(Echo Point)로 이동했다. 

세 자매봉과 블루마운틴을 구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여기가 블루마운틴 투어의 마무리 장소다. 경치는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랐다. 에코 포인트는 바로 그것을 증명했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암석이 세 쌍둥이처럼 다정하게 서서 우리를 반긴다. 블루마운틴의 상징인 세 자매봉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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