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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호주&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

by 훈 작가 2023. 3. 10.

 

 

투어는 내 마음 같지 않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일정에 쫓긴다. 이미 예약한 크루즈 선에 타야 하기 때문이다. 내리자마자 줄을 서고 Real Journey 호에 곧바로 승선했다. 크루즈 선 출발시간이 11시다. 배에 오르자마자 점심 식사부터 먹었다. 배에 오른 모든 여행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접시를 들고 줄을 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여행은 먹는 것도 전쟁이다. 맛있는 메뉴는 조기 품절이다. 한 접시를 비우고 다시 가보니 벌써 인기 메뉴는 동이 났다. 그래도 이것저것 아쉬운 메뉴로 대체해서 배를 채운다. 호텔식 뷔페는 아니지만, 먹을 만했다. 

크루즈 선의 꽁지에서 하얀 우윳빛 거품을 수면으로 뿜어낸다. 크루즈 선이 선착장을 출발한 후 또 한 척의 크루즈 선이 뒤를 따라온다. 선미에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가 갑판 위로 올라갔다. 하늘이 깨끗하다. 요즘 말로 완전 ‘짱’ 이다. 카메라를 아들 녀석에게 넘겨주며 나와 아내는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뉴질랜드의 추억을 담았다. 피오르 협곡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탄 크루즈 선은 태즈만을 향해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수상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나갔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피오르드 협곡이 어깨동무하고 여행객을 반긴다. 

 
밀포드사운드는 뉴질랜드 남섬의 남서부 피오르랜드 국립공원에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 있는 태즈먼 해에서 15km 내륙으로 들어온 만(灣)이다. 이곳 지명은 영국의 웨일스에 있는 밀포드 헤이븐을 따서 붙인 이름이고, 사운드는 “소리”,“음악”이란 뜻 이외 바다의 ‘만’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 ‘밀포드 헤이븐’이라는 이름을 1812년 존그로느라는 선장이 지었다가, 존 로트 스토록스 선장이 다시 바꾸어 ‘밀포드 사운드’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1,2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표범, 펭귄, 돌고래 등이 자주 출현하며, 한때 고래잡이와 바다표범 사냥의 거점이었다고 전해진다. 연간 강수량도 6,000mm 이상으로 1년의 2/3는 비가 온다고 한다. 연중 11월~2월 사이가 가장 따듯하며 섭씨 26도까지도 오르지만, 5월~8월 사이엔 4℃에서 10℃로 내려간다. 1986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곳이기도 하다. 

크루즈선이 서서히 선회했다. 태즈먼 해(海)와 만나는 곳까지 나온 것이다. 이곳은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명소다. 뉴질랜드 하면 단언컨대 “밀포드사운드”라고 한다. 하지만, 명성만큼 감동을 주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노르웨이의 송내협만과 더불어 대표적인 피오르드라고 하는데, 감흥은 그렇지 못했다. 실망이란 말을 쓰기에는 여행의 의미가 떨어질 것 같고, 단순하게 경치로만 볼 때 베트남의 하롱베이가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비교 자체가 의미는 없지만, 무엇이든 기대가 크면 이에 부응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단순하게 보면, 빙하 침식으로 만들어진 자연 지형이다. 영겁의 세월을 통해 자연이 만들어낸 험준하고 깎아지른 절벽과 산들이 솟아 있을 뿐이다. 높은 절벽에서는 빙하가 녹아 땀을 흘리듯 가느다란 폭포들이 여기저기 밀포드사운드로 흘러내리고 있다. 협곡 한쪽 바위 위에 물개들이 모여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그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모습을 담는다. 주도권 싸움에 한 녀석이 밀려났다. 이긴 놈이 암컷 쪽으로 갔다. 암컷을 차지하려고 승부를 가린 모양이다. 
 
밀포드사운드의 백미(白眉)는 스털링 폭포(Stirling Falls)다. 멀리서 보는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의 정방폭포를 이곳으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그러나 사뭇 분위기는 달랐다. 우선 덩치부터 차이가 나니 비교 자체가 무리였다. 영국 군함 클라이오 호의 함장이었던 스털링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높이 155m에서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물줄기가 신부의 하얀 면사포처럼 보인다. 폭포 물을 맞으면 10년 젊어지고 장수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모두가 젊어지고 오래 살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밀포드사운드 풍경을 대표하는 마이터 봉(Mitre Peak)이 정면으로 보였다. 정삼각형 모양의 봉우리가 파란 바닷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멋진 경치를 만들었다. 이 봉우리는 높이가 1,682m로 가톨릭 주교가 쓰는 모자(마이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산 중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바로 이 봉우리가 밀포드사운드의 상징으로 뉴질랜드 관광안내책자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마이터 봉을 지나자 또 폭포가 나타났다. 160m 높이의 보웬 폭포(Bowen Falls)는 밀포드사운드 투어가 끝날 무렵에 깜짝 등장했다. 1871년 영국 군함 클라리오 호를 타고 이곳을 방문했던 뉴질랜드 초대 총독 조지 보웬의 부인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크루즈 선이 선착장으로 서서히 접안한다. 새벽잠을 설치며 시작한 밀포드사운드 투어가 끝났다.


선착장에 많은 여행객 줄지어 서 있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크루즈 선을 바라보고 있다. 새벽에 출발해야만 했던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다.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은 지하철을 타지만, 늦잠을 즐기다 출근하는 사람은 지옥철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처럼 유명한 여행명소를 구경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평범한 진리를 여기서도 본다.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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