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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기다림 속에 있는 행복

by 훈 작가 2023. 6. 6.

기다림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늘 있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집니다. 출근이 늦을까 봐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은 마음이 조마조마할 것이고, 면접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취준생은 초조할 겁니다. 그러나 소개팅을 위해 상대방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두근두근 설렐 수도 있습니다.

익숙한 기다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꽃입니다. 꽃은 늘 기다립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꽃들의 숙명입니다. 무엇보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벌이나 나비가 찾아와야 합니다. 신이 꽃을 만들 때부터 그 자체가 삶이자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처럼 마음이 있다면 어떤 감정일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고요.  특별한 건 없습니다.  늘상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
다 보니 익숙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다름 아닌 사진 때문입니다. 꽃 사진을 찍으러 왔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요. 꽃에 벌이 날아드는 사진을 싶었던 겁니다. 

아침 이슬이 초롱초롱 맺힌 꽃을 마음껏 찍고 나니 욕심이 생긴 겁니다. 그런데 벌들이 오지 않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기다릴 게 없어서 나비나 벌을 기다리느냐고. 딱히, 특별한 거 없습니다. 단지 꽃과 벌이 있는 사진이 밋밋하지 않고 멋질 거라 찍어 보고 싶은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꽃과 함께 녀석들이 오길 기다립니다. 그렇게 동상이몽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바지 아랫부분은 아침이슬로 흠뻑 젖은 상태입니다.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봅니다. 꽃밭에 햇살이 스며들면서 꽃들이 화려한 미모를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꽃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행복을 안깁니다. 기다림이 지겹지 않은 이유입니다.

꽃은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나보다 절실할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밝고 아름다운 표정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반대로 짜증스러운 표정이라도 하고 있다면 나비나 벌이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설령 마음이 그럴지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꽃은 사람과 달리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잡념이 꽃밭을 한 바퀴 돌았을 때였습니다. 녀석이 왔습니다. 조심스레 쭈그려 앉아 바짝 엎드려봅니다. 파란 하늘에 멀리서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리듯 벌이 날개를 윙윙거리며 렌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염없이 아름다운 꽃과 벌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셔터를 누릅니다. 꽃보다 내가 더 흥분한 모양입니다.

기다림은 과정입니다. 과정 없는 결실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결과만 중요시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꽃은 늘 기다림이란 과정에서 하루하루를 이어 갑니다. 꽃은 과정이며, 과정은 기다림이고, 결실을 얻기 위한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기다림은 고통입니다. 그 안에 피와 땀과 눈물이 어려 있기 때문입니다. 늘 행복은 짧고, 과정은 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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