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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5)

by 훈 작가 2023. 7. 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방해 공작

  Susan은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젯밤 마신 와인 탓인지 갈증이나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 딸이 자는 모습을 보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잠버릇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이불을 덮어 주고 나서 커피포트 옆에 놓인 생수를 컵에 따라 마셨다. 
  객실 창가로 가 커튼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남산타워가 보였다. 어제저녁 일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어쩌다 딸이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에 이런 악연이 또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엄마! 벌써 일어났어?” 
“어, 일어났니? 갈증이 나서 물 좀 마셨어.”
“나도 물 좀 마셔야겠네.” 
“엄마가 갖다 줄게.”
“아니야, 어차피 나도 일어나야 해.”
Anna가 물을 마시고 Susan 앞에 앉았다. 
“엄마! 괜찮아?”
“난 괜찮아.”
“피곤하실 텐데 더 주무시지 그래.”
“나이 들면 점점 잠이 없어져. 그나저나 배 안 고프니?”
“아침은 뷔페지?”
“그래, 얼른 씻고 아침부터 먹고 올라오자.”

모녀가 아침을 먹고 올라와 객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엄마 덕분에, 오랜만에 뷔페로 아침을 다 먹어보네.”
“덕분은 무슨 덕분, 그건 그렇고 다른 어려움은 없었니?”
“왜 없겠어?”
“뭔데?”
“엄마! 이 사람들 얼마나 치사한 줄 알아?”
“뭐가 치사했어?”
“내가 변호사를 알아보러 다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가는 곳마다 사건을 맡지 않겠다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사건을 맡지 말라고 방해한 거 있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상하다 싶어 사건을 맡겠다고 했다가 취소한 변호사를 찾아가 불어 봤지. 그랬더니 난처하니까 묻지 말라는 거야. 또 다른 변호사도 비슷하게 대답하더라고. 지금 변호사가 그러더라고 서초동 법조 타운에 내 소문이 다 돌았다는 거야.”
“그럼, 그 사람들이 방해 공작을 펼쳤다는 얘기네.”
“그게 끝이 아니야. 검찰이 이리 저런 핑계를 대며 사건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거야. 검찰총장이 그 사람 대학 후배라서 이미 지침이 내려갔을 거라는 얘기지. 할 수 없이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를 받았어. 그런데 경찰도 겉으로 조사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피의사실을 실시간으로 그 사람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언론의 따가운 비난을 받았지.”
“네 성격에 화가 많이 났겠네.”
“물론이지. 다음 날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파문이 일파만파 대한민국을 흔드는 듯했어. 하지만 그쪽에서 사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불과 며칠 사이에 상황이 확 바뀌어 버린 거야.”
“어떻게?”
“그들이 미리 준비한 가짜뉴스로 언론을 이용한 거지.”
“가짜뉴스? 그런 뉴스도 있어?”
“아니, 내가 꽃뱀이라는 거야. 진실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마치 그 사람을 협박해 거액의 돈을 뜯어내려고 꾸며낸 거라며 허위 사실을 진실처럼 퍼뜨리기 시작했어, 언론을 당해 낼 재간이 있어야지. 변호사한테 당장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야. 어떡해? 참았지. 사실 난 이 사람들이 이 정도까지였는지 정말 몰랐어.”
“Anna야. 정치하는 인간들 그렇지 뭐.”
“억울한 건 둘째치고 엄마 생각만 나더라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데 엄마를 내 문제에 끌어들이는 거 같아 싫었어. 그래도 엄마 목소리라도 들으면 힘이 생길 것 같아 전화를 자주 했던 거야. 그렇다고 다 털어놓으면 내 걱정하느라 엄마도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던 거야.”
“왜 혼자서만 끙끙 앓았어? 진작 엄마한테 얘기하지.”
“엄마! 그게 성격 탓인지 난 그게 잘 안돼. 참, Thomas는 어떻게 지내?”
“Napa Valley에서 할아버지와 살다시피 하지.”
“가업을 이어받으려면 어쩔 수 없겠지. 할아버지 뜻인데.”
“네 아버지는 정계 진출이나 외교 쪽을 원하는데 이젠 포기했나 봐.” 
“Thomas는 그쪽과 안 맞지. 정치라면 차라리 내가 더 나을걸.”
“그건 그렇고 넌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아니, 갑자기 결혼 얘기가 왜 거기서 또 나와?”
“너도 나이가 있잖아.” 
“엄마는 왜 그렇게 신경 쓰여? 내 결혼이.”
“모든 엄마는 자식이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싶어 해. 그래야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세상이 변했으니 나도 꼰대 같은 생각을 버려야겠지. 그런데 자식 일은 그게 쉽지 않아. 엄마 세대는 다 그렇게 살아왔어.”
“엄마! 날 못 믿는 거 아니지?”
“믿지. 그래도 부모 마음은 그게 안 되는 거야. 엄마는 널 설득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단순한 엄마들 마음이 그렇다고 얘기하는 거야. Anna 네 말대로 네 인생이야. 엄마도 인정해.”
“엄마! 인정하면 결혼 얘기는 그걸로 끝.”
“그래, 결혼 얘기는 그만할게.”
“엄마! 병원 언제까지 하실 거야. 내 생각엔 엄마도 은퇴하시고 Second life를 즐기실 때가 되었잖아?”
“그럴 때가 됐지. 아마 네 아빠 임기가 끝나는 내년쯤 정리할까 생각하고 있어.”
“아빠는 뭐 하실 거래?”
“아빠는 회고록 집필하시는 걸 의무적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런지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고 계셔.”
“엄마는 계획하고 있는 거 있어?”
“구체적인 건 없어. 그냥 막연하게 머릿속에만 있지.”
“뭔데?”
“여행.”
“그뿐이야?”
“사진.”
“예전엔 글쓰기도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 
“쓰고 싶긴 한데 엄두가 나지 않아.”
“엄마! 배우면 되잖아?”
“배운다고 글이 막 써지니?”
“언젠가 같이 근무하던 동료랑 구청에서 주최한 ‘글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초청 강의를 들은 적 있거든, 그 강사가 말하기를, 글은 내 얘기를 쓰는 거래. 내 삶의 이야기를, 그게 뭐 어려워. 안 그래, 엄마!”
“강사들이야 돈 받고 하는 거니까 그냥 하는 말이지.”
“그 강사가 글쓰기를 어떻게 비유했는지 알아?”     
“어떻게?”
“쌀 한 포대를 들어서 쌀통에 부으려면 힘을 써야 한다는 거야, 무슨 일은 하든 힘이 든다는 거지. 그런데 글쓰기는 그 보다 훨씬 힘이 안 든다는 거야. 왜냐하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컴퓨터 앞에 앉아 옮기는 일인데 뭐가 힘드냐는 거야, 말 되지. 엄마!”
“호호호… 아니, 그런 말장난이 세상에 어디 있어.”
“엄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잖아. 안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 강사 재밌는 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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