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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3)

by 훈 작가 2023. 6. 29.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엄마의 비밀

  보여야 할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삭막하게 느껴지는 밤하늘이다. San Francisco에서는 만날 수 있는 별들을 왜 서울에서 왜 볼 수 없을까? 왠지 꿈과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밤하늘이 아닌 것 같다.
  도심의 밤이 눈 뜨기 시작했다. 서울의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불빛이 퍼져나갔다. 수많은 별이 떨어져 꽃밭에 핀 것처럼 반짝였다. 그 위로 봄바람이 살짝 불었다. 지나간 바람이 날개를 접으면서 한강 변에 내려앉았다.
  남산타워가 조명을 받아 한결 돋보였다. Anna는 Seattle 타워보다 더 멋진 것 같다고 Susan에게 말했다. Seattle 타워는 도심 한복판 빌딩들과 어울려 있어 돋보이지 않는데 남산타워는 산 위에 우뚝 서 있어 서울의 랜드 마크 같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젊은 아가씨가 전망대 창가 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엄마! 어때? 야경 너무 멋지지…”
Anna는 엄마의 반응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Susan은 딸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처음 와 본 것처럼 약간 크게 ‘Fantastic!’ 하며 배우처럼 연기했다. 
“엄마! 오늘은 내가 쏘는 거야.”
“비쌀 것 같은데…”
“분위기가 차원이 다르잖아.”
 안내했던 아가씨가 테이블로 다가와서 “예약한 대로 준비해 드릴까요?”하고 물어보자 Anna가 “예, 그렇게 해 주세요.” 대답했다.
  딸은 여전히 밝았다. 녀석은 뭔가 애를 쓰고 있다. Susan은 딸이 왜 이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딸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엄마! 내가 이러는 거 마음에 안 들지?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엄마 딸이잖아.”
Susan은 못 이기는 척하며 “알았어.”하고 대답했다.
“식사는 어떤 걸로 예약한 거니?”
“랍 스타요리. 좀 비싼 편인데 먹을 만해.”
  녀석은 평소와 달리 보고 싶다는 전화를 자주 했었다. 무심했던 딸이 이상했다. 그럴 즈음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Susan은 놀랐다. 딸의 부탁도 있었지만, 그녀가 서울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와사비타르타르, 버터를 이용한 관자 요리, 산토리 맥주,  연어요리, 크림수프가 나온 뒤 메인 요리가 나왔다.
“엄마 아니었으면 이런 요리 언제 먹어보겠어? 엄마 덕에 나도 한 번 먹어보는 거지 뭐, 엄마! 고마워. 호호호” Anna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월 속에 묻어 둔 아픔이 오버 랩 되었다. 사랑이란 두 글자를 어루만지던 시절 프러포즈를 받았던 곳이 여기다. 젊은 시절 Susan의 사랑은 슬픈 연가로 끝났다. 유일하게「사랑학 개론」에서 F 학점을 받았다. 
  처음부터 Susan이 이곳에 오기 싫었던 이유다. 하지만 딸이 처한 현재 상황을 알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애써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감추며 딸에게 기분을 맞추려고 애썼다. 
  Susan이 딸의 표정을 살피며 랍 스타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뜻밖의 질문이 날아왔다.
“엄마! 혹시 예전에 여기와 본 거 아냐, 그렇지?”
Susan은 뭔가 감추려다 들킨 것처럼 움찔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표정을 바꾸었다.
“그렇게 보이니?” 
“응, 그래 보여.”
“왜, 그렇게 느꼈을까?”
“난 엄마가 여기 오면 문학소녀처럼 엄청나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이상해. 내가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니야.”
  딸의 말에 Susan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아픈 상처가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드러내놓고 싶지 않았다. 북받치는 감정을 눌러야 하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Anna는 당황했다. 
‘Anna 앞에서 이러면 안 되지.’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눈물을 보인 이유를 다른 쪽으로 바꿀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어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얼굴 화장을 고쳤다.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생각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미안해, Anna야!”
“엄마! 괜찮아?”
“난 괜찮아. Anna야!”
“왜? 엄마!”
“엄마 다 알고 왔어. 그런데 네가 아닌 척하며 감추려고만 하고 있잖아, 엄마는 네가 솔직하게 말해주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Susan이 말을 잠시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엄마는 그런 네 모습이, 그런 우리 딸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너무 마음이 아파. 이게 다 내가 널 잘못 키워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참을 수 없어.”
Susan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은영 이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왔어. 엄마는 혹시 네가 힘들어하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어쩌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니?”
  Anna는 미안했다. 엄마에게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지. 망설였다. 상황을 봐서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말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생각이 어디서 빗나간 건지 알 수 없었다. 물끄러미 엄마를 보던 Anna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 미안해. 호텔에 돌아가면 말하려고 했어, 숨기려고 했던 건 절대 아니야.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미안해” 
“미안해할 건 없어, 다 내 탓이야. 널 그렇게 키웠고, 그렇게 교육시킨 건 엄마야. 엄마는 네가 잘 견뎌 준 것만도 정말 고마워.”
Anna는 말없이 엄마를 보았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자 Susan은 말머리를 돌렸다.
“Anna야! 이러지 말고, 자세한 얘기는 호텔로 돌아가서 천천히 밤새도록 얘기하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분위기 망쳐 놓은 거 같아 오히려 엄마가 미안하다.”
“아니야, 엄마! 내가 미안해.”
“엄마가 너 좋아하는 와인 가져왔는데.”
“「샤토 몬텔레나」?”
“그래, 오프너도 가져왔어. 호텔 가는 길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과일이나 몇 개 사가지고 가자. 어때? 이만하면 엄마 생각 참신하지 않니?”
“나한테는 엄마밖에 없어.”
“엄마도 그래. 일단 수다 그만 떨고 먹자.” 
Susan이 웃는 얼굴로 Anna를 보며 랍 스타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 딸이 쏘는 거라 그런지 랍 스타가 정말 맛있네.”
“립 서비스 아니지? 엄마!”
“딸에 대한 엄마 마음이야.”

  식사를 마치고 아래층 전망대로 내려왔다. 서울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야경을 보면서 Anna가 말을 꺼냈다.
“엄마! 한국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별별 사람이 다 있어?”
“별별 사람?”
“여자들끼리 카페에 모여 수다 떠는 주제가 자녀교육이나 부동산 문제도 많지만, 해외여행을 다녀온 얘기도 만만치 않거든.”
“그런데?”
“동남아 여행은 명함도 못 내밀어. 거의 유럽 여행 얘기거든, 말을 하다 보면 유럽 3대 야경이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게 뭐가 문제야?”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 중에 서울야경을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없어.”
“그야 그럴 수도 있지 않니?”
“엄마! 내 말은 서울야경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유럽 3대 야경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버한다는 거야.”
“설령 네 생각이 옳다고 해도 네 주장이 너무 강하면 주위에 친구보다는 널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기는 법이야.”
“나도 그건 알아. 한데 생각해 봐. 서울야경이 어떤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럽 3대 야경이 자랑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그런 거지 하고, 네가 넘겨야지.”
“어쨌든 여기서 와서 서울야경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유럽 3대 야경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난센스라고 난 생각해.”
“Anna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부분 사람은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거든.”
“나도 알아, 엄마!
Susan은 딸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딸은 서울야경이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데 정작 서울 사람들이 이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딸이 말한 대로 서울야경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오늘따라 그런 서울야경이 Susan에게 너무 환상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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