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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6)

by 훈 작가 2023. 7. 3.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

 

안녕하세요. Anna입니다. 변호사님!”

“Anna ! 지난번 보니까 매우 힘들어 보이던데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말은 그렇게 하셔도 아주 힘드실 거예요. 어차피 어렵고 힘든 싸움이지만 힘내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힘들 땐 언제든지 전화해 주시고 오세요. 제가 소주 한 잔 살 테니까.”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아무 일 없어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거 같은데?”

다름이 아니라 어제 미국에서 어머님이 오셨어요. 그래서 인사 좀 드리고 싶은데 일정이 어떠신지 전화를 드렸어요.”

어떡하죠? 오늘은 지방 출장 변론이 있어서, 내일은 시간이 괜찮은데.”

그럼, 내일 몇 시쯤 뵐까요.”

오후 2시쯤 어떠세요?”

그럼 2시에 뵙겠습니다.”

Anna가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엄마! 내일 오후 2시로 약속했어.”

그래, 그럼, 오늘은 은영이나 봐야겠다.”

지금 전화할까?”

그래 전화해서 나 좀 바꿔줄래.”

Anna가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모! 저예요, Anna.”

아니 웬일이니? 전화를 다 하고. 그나저나 많이 힘들지?”

죄송해요, 이모!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서.”

뉴스 봤어. 이모도 네 성격 잘 아는지라, 말 못 하겠어. 도와주지도 못하고. 어쨌든 말이야, Anna, 마음 단단히 먹어. 알았지.”

알았어요. 저어 이모! 잠깐만요.”

Anna가 엄마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은영이니?”

-- 언니야!, 언제 왔어? 온다고 연락도 안 하고.”

어제 새벽에 왔어.”

언니! 언니! 보고 싶어. 어디야? 내가 갈게. , 지금 어디야?”

은영아! 내가 갈게. Anna랑 같이.”

, 알았어. 언니! 빨리 와, 총알같이 오란 말이야.”

은영은 언니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언니가 서울에 와 있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핏줄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언니다. 하지만 그것도 30년을 떨어져 살았다. 말만 혈육이고 자매이지 이산가족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흥분하는 건 당연하다.

 

승용차가 호텔 주차장을 빠져나와 소월길로 올라섰다. Susan은 조수석 창문을 조금 내렸다. 봄바람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남대로 방향으로 접어들자 차들이 가득했다. 한강이 보이면서 강변에 늘어선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다리를 건너자 도로정체가 되었다. 거북이걸음 끝에 승용차가 서초 나들목을 빠져나왔다. 얼마 달리지 않아 마천루 같은 아파트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며 은영이 언니하면서 맨발로 뛰어나와 Susan을 와락 껴안았다. 울음이 터졌다. 은영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Susan은 동생 등을 토닥거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은영이 떨어지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언니를 보았다. Susan은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닦았다. 은영이 눈물을 훔치며 한 마디 던졌다.

언니 정말 야속한 여자야, 하나밖에 없는 동생 보고 싶지도 않았어, 엄마도 보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대한민국이 싫은 거야.”

은영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언니를 향해 따발총처럼 쏘아댔다. Susan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 말이 맞는다. 어떤 욕을 해도 어떤 수모를 받아도 동생에게는 할 말이 없다. 참으로 무심하고 무책임한 언니였다. 모든 걸 동생에게 맡기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던 언니다. 서로 떨어져 전화로 안부만 주고받은 자매였다.

은영아! 어머니는 어떠시니?”

언니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잖아.”

맞아, 난 자격이 없어.”

그래도 딸이 무섭긴 무섭네, Anna 보러 온 거 보면.”

어쩌겠니? 나도 엄마인걸. 너도 그 정도는 아는 나이잖아.”

. 아니, 내 정신 좀 봐. 들어와, 언니! 나 이렇게 살아.”

은영이 언니를 너무 몰아붙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영아! 네가 잘 사는 걸 보니 언니는 정말 고마워, 진심이야.”

울컥했던 감정을 가라앉힌 은영이 Susan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투정 부리듯 말을 이어갔다.

언니는 날 이렇게 외롭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살았어. 나 같으면 동생이 보고 싶어 단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미국 땅이 좋은 거야.”

Susan은 동생 은영 말을 흘려들으며 말을 돌렸다.

제부와 조카들은?”

애 아빠는 이번에 승진했어,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큰 애는 고3, 작은 애는 중3이야. 공부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우리 집안 내력이 있잖아. 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긴 하지만

넌 학교 휴직했다며?”

애 때문에 1년 쉬려고. 일단 고3, 딸한테 원망 안 들으려면 뒷바라지해 주어야지.. 애 아빠와 상의해서 결정한 거야. 요즘 대학입시는 우리 때와 너무 다르고 복잡해. 엄마들이 공부해서 정보를 뒷받침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웬만한 대학 가기 힘들어. 그게 현실이야. 한 마디로 애들보다 부모들 극성이 더 치열해.”

, 애들이 안 됐다. 그놈의 대학이 뭔지 말이야.”

은영아! 엄마 얼굴이라도 좀 보고 싶은데, 실버타운이 여기서 얼마나 걸리니?”

한 시간이면 가. 언니! 점심 먹고 다녀올까?”

그래 그렇게 하자. 치매는 좀 어떠시니?”

여전하셔.”

SusanAnna가 들고 왔던 쇼핑백을 은영 앞으로 슬며시 건네며 다시 말을 열었다.

, 이거. 빈손으로 오는 게 좀 그래서

뭔데?”

에르메스 신상품이야, 그냥 내 얼굴 봐서 아무 소리 말고 받아. 그리고 나머지는 제부와 조카들 선물이야, 취향을 몰라서 산 거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네가 잘 이야기 전해 줘.”

언니 성격 잘 아니까, 아무 말하지 않고 받을게. 어쨌든 고마워, 언니!”

 

세 사람이 탄 승용차가 서울을 벗어났다. 용인시가지를 지나 나지막한 산을 하나 넘어 숲 속 길로 접어들었다. 선루프 사이로 상큼한 봄바람이 스치며 휘파람 소리를 냈다. 가로수 길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하얀 건물이 보였다. 정문에 들어서자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뒤로 산자락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자주 오시네요. 설 여사님!”

이쪽은 미국에 사는 제 언니세요. 그리고 제 조카고요.”

안녕하세요.”

저의 실버타운 분위기 좋죠?”

, 원장님! 공기도 좋고 시설이 훌륭해 보이네요.”

우리는 아무나 받아주지 않습니다. 지금도 들어오려고 하는 분들이 줄 서 있거든요. 일단 저의 실버타운으로 모시면 신경 쓸 거 하나도 없거든요. 관리가 철저하니까 자녀분들 처지에서는 안심할 수 있는 거죠.”

고맙습니다. 원장님!”

Susan은 실버타운 원장의 말에 마음이 편했다. 그녀가 어머니를 뵙고 올라가시라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 들어서자 이따금 간호사 복장 차림의 직원들이 가끔 지나갔다. 303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1인용 침대가 양쪽에 하나씩 놓여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옆에 있던 요양사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하얀 머리를 곱게 단장한 할머니는 표정이 없었다.

Susan이 들고 있던 핸드백을 Anna에게 맡기고 다가갔다. 그녀가 휠체어 앞에 왼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엄마! 나왔어. 큰딸, 은명이.”

할머니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은명이 어머니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은영이 얼굴을 창 쪽으로 돌렸다. 은명은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눈물 섞인 한()이 허공을 갈랐다.

할머니는 삶의 시간을 잃어버린 돌부처가 된 지 오래다. 은명은 무어라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다. 어머니는 말이 없다. 은명은 어머니 볼을 어루만지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이 못난 딸을 용서해 줘,, 엄마! 뭐라고 한마디라도 말 좀 해 봐.”

흐느끼는 은명은 불효의 한을 풀 수 없었다. 은명은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뭐라고 혼이라도 내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어머니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Anna는 두 발짝 떨어져서 엄마와 할머니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한()에 못 이기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다.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Anna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어린 천사처럼 웃었다. Anna도 할머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Anna가 휠체어 옆쪽으로 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머니! 저 은별이, 저 은별이에요.”

할머니가 Anna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마 손녀딸을 알아보는 듯 눈빛만 반짝였다. 할머니가 아주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Anna 볼을 만졌다. Anna가 할머니 손을 잡았다. Anna의 눈에서 수정 같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Anna! 할머니 기억나니?”

아니, 전혀 안 나.”

엄마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다. 누가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엄마는 왜 할머니 곁을 떠나야 했을까? 엄마의 한()이 맺힌 삶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Anna는 엄마의 한()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한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말할 수 없는 엄마만의 아픔이 있을 것이다.

Anna는 엄마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한이 어쩌면 바로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시밭길이다. 아마도 엄마는 딸인 자신을 위해 불효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Anna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의 선택은 불효였다. 엄마는 딸을 선택했다. 엄마는 딸을 선택한 불효의 눈물을 감당해야 했다. 그게 엄마의 한()이다.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한()이다. 그런 엄마가 30년 만에 할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슬프게도 할머니는 영혼을 잃은 천사가 되었다.

Anna는 엄마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엄마! 실컷 울어.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마음이 풀리고 한()이 풀려.”

“Anna! 엄마는 불효자식이야. 불효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어. 엄마는 할머니에게 참 나쁜 딸이야.”

엄마! 지난 건 도리가 없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은 있어. 그 시간만이라도 한()을 풀면 돼.”

옛날 어른들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 부모란 내가 효도하고 싶을 땐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는 게 부모라고. 생전에 잘하라는 뜻인데, 난 그것을 알면서 하지 못했어. 할머니가 날 얼마나 원망했겠니?”

엄마! 이런 모습 처음 봐. 앞으로 내가 잘할게.”

세상에 모든 딸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 마음을 알게 돼. 아마 너도 그럴 거야. 지금 내 마음 몰라.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서 엄마로 살면서 인생이란 꿈을 행복으로 마무리하고 가는 거야. 그게 여자의 일생이지.

엄마! 말하는 것 보니 이제 좀 마음이 풀리셨나 봐.

후회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지는 길을 걷는 게 삶이지. 문제는 후회가 늦으면 늦을수록 삶은 행복과 멀어진다는 사실이야. 난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았어. 이게 내 운명이라는 것을 난 잘 알지.”

옆에서 언니를 지켜보던 은영이 입을 열었다.

언니! ()을 풀어 줄 수 없어. 언니가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이승을 떠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효도를 실천하는 거야. 그것밖에 없어.”

맞아, 은영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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