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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4)

by 훈 작가 2023. 6. 30.

 

딸의 상처

  멀리 조명 빛을 받은 남산타워가 등대처럼 보였다. 불과 두 시간 전만 해도 모녀가 식사하며 정담(情談)을 즐기던 곳이다. 시선을 돌려 아래쪽을 보았다. 소월길로 무언가에 쫓기듯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사라졌다. 
“엄마! 다 준비됐어. 근데 정말 엄마 놀라워.”
“뭐가?”
“와인잔까지 가져온 거 말이야.”
“그게 뭐가 놀라워.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건 당연하잖아.”
“그래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는 건가.”
“하하하…
모녀가 웃었다.
“엄마! 우리 건배 하자.”
“그래.”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하게 호텔 방 안으로 퍼졌다. 두 사람이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신 다음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엄마! 다 이야기할게.”

  청와대 경내에서 주말 테니스 시합이 있었다. 남·여 복식 게임에 우연히 Anna는 대통령과 한 조가 게임을 하게 되었다. 스코어를 올릴 때마다 대통령의 하이 파이브 동작을 취해 호응해 주었다. 게임이 승리로 끝난 후 대통령은 Anna를 한 손으로 가볍게 안아 주며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이후로도 시합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신체적 접촉이 계속되었다.
  Anna는 대통령 기분에 맞추려고 테니스 경기에 나가는 것이 싫었다. 고민 끝에 비서실장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비서실장은 이유를 물었다. Anna는 대통령과의 신체적 접촉 때문이라 말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청와대 근무 분위기를 들먹거렸다. 테니스 시합에 계속 나오라는 얘기였다. 그 시점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마지못해 나갔다.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한 번은 대통령이 샤워할 때수건을 갖다 주거나 옷장에 있는 속옷을 근처에 가져다주도록 비서실장이 시켰다. 거절하고 싶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목욕용품을 갖다주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너무 불쾌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행동이 음흉해져 갔다. 성과 관련한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속옷 사진도 보내왔다. ‘너의 냄새를 맡고 싶다. 몸매가 좋다. 사진을 보내 달라. 너는 남자에 대해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간다. 섹스를 알려주겠다.’ 등 남녀 간의 성관계 과정까지 포함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악마였다.
  후임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 숙소를 나와 오피스텔로 옮겼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사과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고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변호인을 알아보려고 몇 군데 다녔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임 대통령 측에서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수행 비서라고 하는 황 실장을 만났다. 그가 소송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나는 조건으로 1억 원을 제시했다. Anna는 공식적인 사과만 해주면 조건 없이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황 실장은 사과는 어렵고 합의금만 받고 떠날 것을 종용했다. Anna는 자신이 원하는 것 사과뿐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은 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Susan은 딸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자존감이 강한 딸은 절대 기(氣) 죽을 아이가 아닌데 기가 많이 꺾인 듯 보였다. 딸은 불의와 타협하거나 굴복할 애가 아니다. 부러지면 부러졌지 절대 꺾이는 아이가 아니다.
“엄마! 정의는 내 편인 줄 알았어, 근데 그렇지 않아. 시작할 때는 바로 진실이 밝혀지고 이길 줄 알았는데, 막상 싸움을 시작하고 보니 수렁에 빠져든 느낌이야. 갈수록 외롭다는 생각만 들다 보니 엄마 생각만 나서 미치는 것 같았어…”
“Anna야! 지금의 고통은 신이 널 시험하는 거야, 이를 헤쳐나가는 게 인생이야. 바다에는 파도가 있기 마련이지. 파도를 넘는 건 도전이야. 도전은 고통이 따르지. 네가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 시련 없이 삶의 꽃을 피울 수 없어. 오늘을 이겨내야 내일이 오는 거야. 지금 당장 신이 네 옆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신이 너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야.”
  Susan은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게 해야 할 일이었다.
“엄마! 당분간 내 곁에 있어 주면 안 될까?”
“그래, 있어 줄게.”
“엄마! 고마워.”
“Anna야! 벌써 새벽 2시야.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 또 얘기하자.”
“그럼, 엄마 먼저 샤워해.”
  Susan은 샤워하면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딸의 싸움이 어디가 끝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승소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깊이 생각해 봐도 자신이 나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딸을 보면 마냥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당분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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