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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10)

by 훈 작가 2023. 7. 1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번민(煩悶)

  김재형 변호사로부터 1심 재판 패소 소식을 들었다. Anna는 어떻게 소송을 이어갈지 막막했다. 일단 항소를 결정했지만 2심 재판도 전망은 부정적이다. Anna는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인데 현실은 그 반대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정말 세상이 왜 이런 것일까? 
  판결문을 보고 Anna는 대한민국 사법 정의를 의심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사법부의 정의가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정의를 기만하며 위협하고 있는 그림자가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의심이 든다. 정의롭지 못한 나라다.
  판결문에 드러난 표현 중에 ‘… 정황상 일부 피의사실이 인정될 소지가 있기는 하나 이를 증빙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므로 이에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어 원고 패소를 결정한다.’라는 요지가 있다. 이를 보고 성폭행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를 끌어내기에 넘을 수 없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음을 Anna는 깨달았다. 
  법은 피의사실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로 판결한다. 법은 도덕이나 윤리적 관점에서 죄를 판결하지 않는다. 현실은 그런 관점에서 죄를 단죄하는 사법적 잣대가 없다. 그러기에 성(性)과 관련한 피의자가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법을 넘어 도덕과 윤리에 이르는 영역까지 면죄부를 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Anna는 일단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그다음 김재형 변호사를 만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상의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전화했다.
“변호사님! 판결문 잘 받아 보았습니다.”
“Anna 씨!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용기를 잃지 않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언제든 편안한 시간에 주세요. 어떻게 전략을 짜서 소송을 이어갈지 Anna 씨와 심도 있게 상의해야 하니까요.”
“예, 변호사님! 전화하고 찾아뵐게요.” 
“Anna 씨! 힘내세요. 옆에 제가 있고, 훌륭한 어머님도 와 계시잖아요. 아셨죠?”
“예, 감사합니다.”
  Anna는 대한민국을 믿었다. 그녀는 민주주의를 믿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패소한다고 했지만,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김 변호사가 자신을 설득하고 만류했는지를 알았다. 그렇지만 질 수 없는 싸움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이겨야 한다. 
  김재형 변호사도 어머니와 자신을 만나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서로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동지가 되기로 하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Anna는 어쩌면 이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간 혼자서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비록 1심 판결은 졌지만, 마지막 승부는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Anna는 1심 판결을 굳이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도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엄마도 짤막한 뉴스였지만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허탈한 마음에 엄마와 단둘이 꽃지해변이나 다녀오고 싶어 전화했다. 
“엄마! 우리 바다 구경이나 갈까?”
“어디로?”
“지난번 제주도에서 얘기했잖아, 꽃지해변 한 번 같이 가 보자고.”
‘엄마는 혼자 명동성당이나 가 보려고 하는데.”
“평일 미사는 저녁 시간에 있잖아.”
“신도들 없을 때 조용히 혼자서 기도드리고 싶어서 그래.”
“그래, 알았어. 갔다 와서 전화할게.”
“잘 다녀 오구.”
  
  마포대교에 들어서자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였다. Anna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했다. 국회의사당 윤중로에 이르렀을 때 활짝 핀 벚꽃이 터널을 이루듯 했다. 인도에는 벚꽃놀이를 즐기려는 상춘객들로 넘쳐났다. 윤중로를 지나 올림픽 대로로 접어들 때까지 싱그러운 봄날의 정취를 눈으로만 즐겼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속도를 높였다. 들녘은 봄기운이 완연해 보였고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차창 밖 풍경이 연초록으로 변했다. 따사로운 봄 기온에 식곤증이 스멀스멀 그녀를 괴롭혔다. 서평택을 지나 멀리 서해대교가 보였다. 행담도 휴게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출발한 지 1시간 반쯤 지난 시간이다.
  잠시 휴식을 위해 행담도 휴게소로 들어갔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캔 커피 하나를 샀다.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시면서 휴게소 식당 안으로 들어가 빈 테이블에 앉았다. 식당 한쪽에 설치된 대형 TV 화면에 전직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인터뷰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우리 측 요구사항을 들었으면 조용히 끝날 일을 갖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새삼 성추행이랍시고, 문제를 부풀려 더욱 꼬이게 만든 걸 보면 원고 측이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고 너무 날뛰는 것 같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빈정대는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자신을 얕잡아보는 게 확실했다. 너무 불쾌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시던 캔 커피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나왔다. 그들의 모욕적인 언행에 속이 끓었다. 
  승용차를 탄 후 멍하니 앉아 한동안 시동을 걸지 않았다. 이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조롱당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오만방자한 사람들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이 사람들이 왜 이리 날뛰는 걸까.

  Anna는 꽃지해변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해변은 적막했다. 쓸쓸한 해변에 봄바람만 세차게 불었다. 계절은 봄인데 바람은 봄 같지 않게 차가웠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탁 트윈 해변을 찾았는데 바다는 그녀 마음을 외면한 채 모질게 불어댔다. 그래도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Anna도 봄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누가 봄을 빼앗은 것일까. 누가 오는 봄을 막고 있는가. 누가 이리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잇는가. 왜 세상이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걸까. 왜 이리 염치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사는 것일까.
  그래도 세상은 누군가 살맛이 나는 세상을 만들려고 땀 흘리겠지.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삶은 포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따뜻하고 향기롭게 만들고 있을 거야.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인 거야. 
  그런데 왜 내일이 오는 게 두려운 걸까? 아마 그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내일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해. 그게 삶이야.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수평선에 조그만 배 한 척이 힘에 겨운 듯 지친 모습으로 엉금엉금 기어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다.
  Anna는 두려움이 뭔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패배다. 자신이 진다면 이 땅에 정의와 공정이 존재하지 않는 거다. 분명 정의는 존재한다. 진실이 존재하는 이상 정의는 위선과 거짓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권력이 세상을 쥐고 흔든다 해도 그것은 한순간에 광풍일 것이다. 그래, 내가 먼저 꺾여서는 안 돼.

  오늘이 과거로 달려가고 있다. 저녁 시간이 달려온다. 노을을 품은 해가 수평선으로 떨어지고 있다. 발걸음을 돌렸다. 저만치 카메라를 걸쳐 맨 사람들이 무리 지어 오고 있다. 그들이 해변 쪽에 가로로 늘어섰다. 각자 삼각대를 세우더니 카메라와 조립한 후 꽃지해변 일몰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 작업을 했다.
  해가 수평선으로 떨어지자 장엄한 일몰 풍경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합창하듯 연이어 터졌다. 셔터 소리가 Anna에게는 폭죽 소리처럼 연이어서 들렸다. Anna는 마치 자신이 봄맞이 해변 축제 행사 현장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서쪽 하늘이 화폭으로 변하면서 한 폭의 그림이 그려졌다. 상상 이상의 황홀한 낙조(落照) 풍경이었다. 제주도에서 보았던 석양(夕陽) 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해변 쪽에 서 있는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운치를 더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몰 풍경이 세상에 또 있을까.
  Anna는 일몰에 취해 버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어지럽혔던 번뇌(煩惱)를 잊었다. 붉은 노을이 남긴 여운은 길게 남았다. 해가 진 후 노을빛이 한동안 무대 뒤로 사라지지 않았다. 꽃지해변의 일몰은 Anna 영혼에 감동을 선물로 남기며 멋진 추억의 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Susan은 택시를 타고 명동 입구에서 내렸다. 명동의 오후는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젊은이들이라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명동은 예나 지금이나 활기가 넘치는 거리다. 명동거리는 지금도 서울을 상징하는 거리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R 호텔 앞을 지나자 바로 명동성당이 보였다. 성당 건물 뒤로 봄 하늘이 맑게 펼쳐져 있다. 어디든 성당 경내에 들어서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 손을 잡고 상당을 다녔던 터라 성당 분위기는 낯설지 않다. 평일 저녁 미사 시간까지 아직은 많이 남아서 그런지 신자들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성당 중앙 통로로 걸어가 중간까지 걸어가 오른쪽 의자에 앉았다. 먼저 핸드백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끈 다음 다시 넣었다. 그리고 하얀 미사보를 펼친 다음 머리에 쓴 후 묵주를 꺼냈다.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묵주의 십자가를 잡고 성호경을 한 다음, 십자가의 발 부분에 입을 맞추고 사도신경을 했다. 다음 묵주 알에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세 개의 알을 넘기며 알 개수만큼 성모송을 했다. 성모송 세 번을 묵상한 다음, 묵주 알을 잡고 머리를 숙이며 영광송을 하고 나서 구원 기도를 드렸다. 묵상 주제인 고통의 신비를 택하여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순서대로 묵주기도를 해 나갔다. 5단까지 다 끝내고 성모 찬송을 바쳤다. 마지막으로 성호경을 한 다음 묵주기도를 마쳤다.
  한때 Susan은 자신의 삶이 왜 이리 기구(崎嶇)한 운명인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신(神)도 원망했고 주님도 원망했다. 그저 착하고 올곧게 살아왔는데 왜 자신은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도대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 주님께 묻고 싶었다. 죄를 지었으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말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신(神)이 존재하는지 주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지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만날 수가 없었다. 믿음이 무엇인지 흔들렸다. 종교를 의심했다. 신의 자비와 주님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면 어떤 자비이고, 어떤 사랑이란 말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신의 자비든 주님의 사랑이든 그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Susan은 자신을 지배한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았다. 그녀가 딸인 Anna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것처럼 이타적인 사랑이 주님의 뜻이다. 자신의 부족한 사랑을 주님께서 딸에게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Susan은 딸과의 언쟁(言爭)을 벌인 게 속상했다. 그녀는 말다툼 자체가 딸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권력과 맞서 싸우는 딸을 설득하는 것이 엄마가 해야 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기적이었다. 그것은 딸을 위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Susan 자신이 엄마로서 마음 편해지고자 했던 내면의 번민이었다. 
  Susan이 명동성당을 찾은 이유는 진정한 엄마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선택이다. 이제 더 이상 Anna와 불필요한 언쟁을 피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딸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느낌을 준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딸은 딸대로 악마와 싸우되 자신은 자신대로 악마와 응징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자신도 없다. 왠지 두려움만 앞섰다. 자칫 가슴 깊이 숨겨둔 진실을 드러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지켜온 삶의 행복을 모두가 무너뜨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단칼에 승부를 가를 수는 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마음이 심란했다. 마땅히 눈앞에 보이는 묘수가 없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어쩌다 딸이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엄마로서 답답할 뿐이다. 아마 그녀가 Anna를 배속에 갖고 있었을 때 그녀의 엄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nna는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피고 측 변호인단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여론몰이하며 자신을‘꽃뱀’에 비유해 감정이 안 좋았는데, 해도 해도 너무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죄하고 반성해야 할 당사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응징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녀는 일단 자신이 생각한 바를 준비해 변호사님을 만나 상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예, Anna 씨!”“내일 찾아뵙고 싶은데 어떠세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전화 줘서 고마워요.”
“그럼, 내일 찾아뵐게요.” 
“내일은 언제라도 좋아요.”
“그럼, 출발할 때 전화하고 찾아뵙게요.” 
“예, 내일 봐요. Anna 씨!”
  서울시 내에 들어서자 차들로 붐볐다. Anna가 올림픽대로에서 양화대교를 건너 강북 강변도로를 탔다. 도로가 많이 정체되었다. 차가 서행하자 엄마에게 전화하려다 말았다. 공덕동 로터리를 지나자 차량정체가 풀렸다. 충정로로 방향을 들어서며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바로 오피스텔이 보였다.     

“엄마! 나야.”
“잘 다녀왔니?”
“오늘 일몰이 너무 멋졌어. 엄마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또 기회가 있겠지.”
“저녁은?”
“호텔에서 먹었어.”
“미안해, 혼자 드시게 해서.”
“뭐가 미안하니. 그런 말 하지 마.”
“내일 변호사님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갔으면 하는데.”
“그래, 알았어.”
“그럼 잘 주무시고. 내일 출발할 때 전화할게.”       
  전화를 끊자마자 Anna는 단골 중국집에 자장면을 시켰다. 재킷을 벗은 후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한글 프로그램을 클릭한 후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어떻게 시작해야지…. 
  그 사이 인터폰이 울렸다. 자주 오던 배달 오토바이 아저씨 얼굴이 보였다. 얼른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고 자장면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인사말을 받는 둥 마는 둥 그가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자장면을 식탁에 놓고 앉았다. 생각해 보니 배가 고프다. 일회용 자장면 용기를 덮고 있는 랩을 벗겨내자 자장면 특유의 냄새가 코로 빨려 들어왔다. 먹기도 전에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면과 자장을 비비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이 짜증스럽다. 배고픈 마음에 빨리 먹고 싶은데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서투른 젓가락질로 자장면 입으로 가져갔다. 자장면은 첫 번째 젓가락으로 먹는 면이 제일 맛있다.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남자들과 중국집에 가서 식사할 경우가 있을 땐 절대로 자장면은 먹지 말라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자장면 맛에 빠지다 보면 숙녀 체면을 구기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검은 자장이 입 주위에 묻으면 요조숙녀로서 이미지를 구긴다는 엄마의 쓴소리였다. 
  예전에 들었던 잔소리가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실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딸 나이 서른다섯인데 엄마에게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내성적인 성격의 평소에 말수가 없는 엄마이지만 유독 자잘한 부분에 잔소리를 못 참는 성격이다. 
  엄마는 매사에 침착하면서도 치밀한 분이다. 한국적인 표현으로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다. 너무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보니 다소 소심한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가끔 자신이 엄마와 닮은 점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별로 없다. 하지만 미모만큼은 엄마의 유전자 덕이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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